내용 요약
박성룡은 해방 이후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휘파람새』·『풀잎』 등을 저술한 시인이다. 1930년에 출생해 1955년 김정옥ㆍ이일 등과 함께 〈영도〉 동인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1956년 『문학예술』에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1957년 『신태양』 기자로 입사한 후, 1958년 월간 『사상계』 기자로 근무했다. 1969년 첫 시집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을 출간한 후 『풀잎』 등 총 7권의 시집을 간행했다. 박성룡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의미들, 미약하나마 한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운 생명체가 존재하는 위대한 자연을 평생을 바쳐 노래한 시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정의
해방 이후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휘파람새』·『풀잎』 등을 저술한 시인.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1955년 김정옥ㆍ이일ㆍ박이문ㆍ박봉우ㆍ윤삼하 등과 함께 〈영도〉 동인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그해 12월, 이한직 시인에 의해 『문학예술』지에 「교외(郊外)」라는 작품으로 제1회 추천을 받았다. 1956년 4월 같은 지면에 「교외(郊外)ㆍ1」이라는 작품으로 이한직에 의해 제2회 추천을 받았으며, 7월에 「화병정경(花甁情景)」이라는 작품으로 조지훈에 의해 최종 추천을 받았다.
1957년 『신태양』사 기자로 입사한 후, 1958년 월간 『사상계』 기자로 근무했다. 1959년 『민국일보』 문화부 기자로 입사하여 1962년까지 근무했다. 1961년 박희진ㆍ성찬경ㆍ박재삼ㆍ이창대ㆍ이성교ㆍ박이도 등과 함께 〈60년대 사화집〉 동인을 결성하여 활동했다. 1962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입사하여 1965년까지 근무했다. 1964년 『한국일보』 주간국 차장으로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부평으로 이사하여 1975년까지 농부로 지냈다.
1969년 4월 첫 시집 『가을에 잃어버린 것들』을 삼애사에서 출간했다. 1970년 9월 두 번째 시집 『춘하추동』을 민음사에서 간행했다.
1975년 동시 「풀잎」이 중학교 1-1 국어교과서에 실렸다. 그해『서울신문』 편집국 문화부 차장으로 다시 취업했다.
1977년 2월 제3시집 『동백꽃』을 신라출판사에서, 1978년 8월 산문집 『시로 쓰고 남은 생각들』을 민음사에서, 1982년 12월 제4시집 『휘파람새』를 서문당에서, 1987년 12월 제5시집 『꽃상여』를 전예원에서 간행했다.
1990년 『서울신문』 편집국 부국장을 역임한 후 정년퇴임을 했다.
1991년 12월 제6시집 『고향은 땅끝』을 문학세계사에서, 1998년 1월 제7시집 『풀잎』을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했다.
2002년 7월 29일 타계했다.
상훈과 추모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한국현대시사』(오세영 외, 민음사, 2007)
- 『한국 전후 문제시인 연구ㆍ4』(김학동 외, 예림기획, 2005)
- 「박성룡의 시세계 연구」(고현송, 전남대 석사논문, 2012)
- 「박성룡의 시 연구」(이건청, 『한국언어문화』 27집, 한국언어문화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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