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호(雅號)는 초개(草芥). 1936년 서울에서 출생. 1959년『사상계』에 시 「설경」 등이 추천되어 등단하여 시인으로 활동하는 한편, 무용평론가와 서양화가로 활동하였다.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 『매혹』 등 17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김영태는 1936년 11월 22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1957년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 1959년 홍대 재학 중 박남수 시인의 추천으로 『사상계』에 시 「시련의 사과나무」, 「설경」, 「꽃씨를 받아둔다」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김영태는 음악 평론을 시작으로 평론의 길에 들어섰으며 자유극장 동인 시기부터 1966년까지 10여 년간 연극평론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중학생 시절 외국 서적 판매점에서 발레 사진집에서 본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기억이 그를 무용으로 이끌었다. 이후 발레리나 스베들라나 밸리 오소바의 책과 안나 파블로바의 사진집 등 100여 권의 발레 사진집을 소장하게 된 그는 1969년부터 무용 평론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68년 『월간중앙』 기자로 입사하였다가 몇 달 안 돼 한국외환은행 조사부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1992년 외환은행을 퇴사할 때까지 조사부에서 근무하며 은행 잡지와, 단행본, 각종 통계 자료를 만들었다.
1965년 첫 시집 『유태인이 사는 마을의 겨울』(중앙문화사)을 발간한 후, 1968년황동규, 마종기와의 3인 시집 『평균율1』, 1970년『바람이 센 날의 인상』(현대문학사), 1972년『평균율2』, 1975년『초개수첩』(현대문학사), 1978년『객초』(문예비평사), 1979년『간주곡』(문예비평사), 1981년『여울목 비오리』(문학과지성사), 1986년『결혼식과 장례식』(문학과지성사), 1989년『느리고 무겁게 그리고 우울하게』(민음사), 『매혹』(청하), 1993년『고래는 명상가』(민음사), 1994년『현대시 94』(문학세계사), 『침묵으로도 다하지 못하는 그리움』(양문각), 1995년『남몰래 흐르는 눈물』(문학과지성사), 1997년『하늘 바람꽃이 핀다』(양문각) 등을 간행했다.
그 외에도 시선집으로 『북호텔』(민음사, 1979), 『어름사니의 보행』(지식산업사, 1984) 등이 있으며, 시평집으로 『변주와 상상력』(고려원, 1984)이 있다.
이러한 시인으로서의 활동 외에도 김영태는 무용평론가, 서양화가로서도 많은 활동을 했다. 1984년『객석』 무용자문위원으로 활동한 것을 비롯하여, 많은 무용평론을 썼고, 동아무용콩크루 심사위원, 서울무용제 운영위원, 국립극장 발레단 무용자문위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무용평론가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또한 대학의 전공을 살려 7차례의 그림 전시를 갖기도 했다.
김영태의 무용 평론은 『갈색 몸매들, 아름다운 우산들』(1985)을 시작으로, 『저녁의 코펠리아』(1988), 『눈의 나라 사탕비누들』(1993),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있다』(2002), 『살아 있는 춤 눈으로 쓴 시』(2004) 등 열세 권의 평론집에 담겼다. 그 밖에 열권의 인물 소묘집, 열두 권의 산문집, 두 권의 음악평론집을 출간하였다.
‘전방위 예술인’으로도 불렸던 그는 독특한 필체로도 유명했다. 일명 ‘봉두난발체’로 불렸는데 그 필체로 자신의 저서의 표지 또는 다수 무용인 작품의 팜플렛을 장식했다. 2005년에는 평생 모은 무용 자료 2만여 점을 아르코예술정보관에 기증했고, 암 투병 중에도 공연장을 지켰다. 오랫동안 춤 공연을 보았던 문예회관(현 아르코예술극장) 가열 123번은 언제나 극장 측에서 비워든 김영태의 지정석이었다. 그가 남긴 무용평론집을 통해 무용과 함께한 그의 30여 세월이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가 문인으로서 펴낸 시집은 모두 17권에 이르며, 『갈색 몸매들』, 『막간』 등의 무용평론집이 13권, 『징검다리』 등의 산문집이 12권, 『인간의 집』 등 소묘집이 10권이 달한다. 2007년 7월 12일 타계했다.
1972년 현대문학신인상, 1982년 한국시인협회상, 1989년 서울문화예술평론상(무용), 2004년 허행초상, 댄스 하트 아워드 상을 수상했다.
김영태의 시는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단편적인 인상과 상념들에 감각적 분위기와 표정을 부여하였으며, 독특한 심미안과 언어의 연금술로 시적 환상의 세계를 창출했다고 언급된다. 또한 『초개수첩』 이후에는 철저한 자기 축소의 극화를 보여주면서, 미완과 여백의 수법에 의한 현실과의 긴장관계라는 긍정의 범주로 순환하는 시세계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미의식의 측면에서 김영태의 시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사유는 “무(無)에 대한 인식”이며, “무에 대한 깨달음이 미에 대한 인식이고, 미에 대한 깨달음이 무라는 인식”을 보여 주었다고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