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전라남도 완도군 출생. 1967년 2월 『사상계』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김만옥은 1946년 3월 6일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여서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바다에서 여의고, 어려운 환경에 처하였으나 그의 어머니의 노력으로 1960년 3월 완도중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이 무렵 김만옥은 『학원』이란 잡지에 많은 시와 산문을 게재했으며, 『학원』지의 학생기자로 활동하였다.
1963년 3월, 조선대학교 부속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고교 2학년이던 1964년 11월, 첫 시집 『슬픈 계절의』를 발간했다. 이 무렵 김만옥은 광주 시내 고등학교 문학지망생들과 함께 〈석류〉, 〈시향〉 등의 동인을 조직하여 활동했다.
1965년 4월 고교 재학 중,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시가 가작으로 뽑혔으며, 1967년 2월, 『사상계』 제8회 신인문학상에 시 「아침 장미원」외 3편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1967년 3월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1968년 6월부터 전라남도 광주에서 한상숙과 함께 살기 시작하였는데, 1969년 2월 조선대학교에서 제적된 후 1970년 2월에 첫딸을 낳았다.
이후 김만옥은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특히 소설 창작에도 힘을 기울여 1971년『대한일보』와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각각 단편소설이 당선이 되었고, 1972년 5월에는 5·16민족상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다. 이러한 여러 차례 수상에 의한 상금은 경제적으로 일정한 도움을 주었다. 1975년 9월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세상을 떠났는데, 사인은 분명하지 않다.
1985년 1월 김준태의 편집으로 유고시집 『오늘 죽지 않고 오늘 살아 있다』(청사)가 간행되었다.
1998년 11월 5일 광주시립 민속박물관 내에 김만옥시비가 건립되었다. 이 시비에는 「딸아이의 능금」이라는 작품이 새겨져 있다.
김만옥의 시는 주로 이미지즘 기법과 심미주의 성향을 보여 주고 있는데, 특히 이질적 이미지들의 결합에 의한 참신성과 관념의 육화에서 오는 구체성, 강렬성, 환기성 등이 특징으로 평가된다. 또한 심미주의 성향은 청순한 상상력에서 출발하여 우울과 허무, 비애와 관능 등의 세기말적 상상력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보조관념만 남아 암시성, 다의성, 입체성, 문맥성, 교감성을 보이는 상징시풍으로까지 발전하였다고 언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