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판서, 우찬성, 의정부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473년 강원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내직으로 옮겨 공조참판 · 첨지중추부사 ·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하였다. 1478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어 해인사 소장의 대장경 판목을 봉심했고, 다시 동지중추부사가 되었다.
1483년 천추사(千秋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이듬해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변방의 관방 시설과 군자 확보에 힘썼다. 그 뒤 한성부우윤을 거쳐 사헌부대사헌에 부임하자 임금에게 시폐(時弊)에 관한 시무책(時務策)을 올려 받아들여졌다. 이어 동지중추부사 · 첨지중추부사를 역임하고, 예조참판을 거쳐 1489년 사헌부대사헌에 재임되었다. 이 때 재이(災異) 방지책 등 시무책을 제시하였다.
1492년 한성부판윤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정조사(正朝使)에 지명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회피해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동지중추부사로 강등되었다. 연산군 즉위 후 형조판서에 올랐으며,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추관(推官)이 되어 일처리에 앞장섰으며, 그 공로로 숭정대부에 승진하고 의정부좌참찬에 이어서 우찬성에 올랐다.
그 뒤 좌찬성으로서 지경연사(知經筵事) · 세자이사(世子貳師)를 겸했고, 군기시제조(軍器寺提調)가 되어 군기 개선에 노력하였다. 1504년(연산군 10) 함경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돌아와 판중추부사가 되었다.
중종반정에 동조해 정국공신(靖國功臣) 3등에 책록, 의정부좌찬성에 임명되었으며, 밀산부원군(密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참고문헌
- 『성종실록(成宗實錄)』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목계일고(木溪逸稿)』
- 『이악정집(李樂亭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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