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악 ()

영산회상 / 대풍류, 줄풍류
영산회상 / 대풍류, 줄풍류
국악
개념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
이칭
이칭
방중악(房中樂), 줄풍류, 사풍류(絲風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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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세악은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조선시대 임금의 행차 뒤쪽에서 연주하였다. 세악수는 풍류방 등에서 별도의 음악 활동을 하였고, 근대에 세악수가 장악원에 소속되고, 풍류방 음악이 정악으로 불리면서 이왕직아악부 시기에 세악이 실내악 규모의 악기 편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작은 음량으로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세피리를 사용하고 대금은 주로 저취와 평취 위주로 연주하며, 장구는 채로 변죽을 울리는 주법을 사용한다. 1980년대까지는 연주할 때 속옷으로 바지저고리를 입고 겉옷으로 두루마기를 입었다.

정의
상대적으로 음량이 작은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
개설

세악(細樂)은 주1가 연주하였던 소편성의 음악, 즉 소리가 작은 음악에서 유래하였다. 세악수는 풍류방 등에서 별도의 음악 활동을 하였고, 근대에 세악수가 장악원에 소속되고, 풍류방 음악이 정악(正樂)으로 불리면서 이왕직아악부 시기에 세악이 실내악 규모의 악기 편성 또는 적은 소리의 음악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따라서 음량이 작은 악기로 편성되며, 음량이 큰 악기는 악기의 구조, 주법 등을 변화하여 작은 소리로 연주한다. 실내에서 연주하였기에 ‘방중악(房中樂)’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서양음악의 실내악에 해당된다. 1932년에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가 이습회(肄習會)를 시작하면서 거문고 · 가야금 · 양금 · 대금 · 세피리 · 해금 · 단소 · 장구 중에서 일부 악기로 편성된 소규모 편성에 의한 합주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었다.

고정된 편성 원칙은 없으며, 현악기만의 편성, 현악기와 관악기의 편성, 현악기와 타악기의 편성, 현악기와 관악기와 타악기의 편성 등 다양한 조합으로 편성되었다. 각 악기의 연주자는 1명이며, 각 악기별 2명 이상이 편성될 때는 세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최대 8가지 악기가 모두 편성되기도 한다. 세악의 악기 편성은 가곡 반주의 악기 편성과 같다. 다른 이름으로는 줄풍류, 사풍류(絲風流)라고도 한다.

역사 및 유래

세악이라는 음악 용어는 작은 소리의 음악과 그 악기 편성을 가리키며, 작다라는 개념은 대취타(大吹打) 같은 큰 소리 음악에 대한 상대적인 주2이다. 세악수는 장용영(壯勇營), 훈련도감[훈국], 금위영(禁衛營), 어영청(御營廳)에 소속된 병조 소속의 악대로, 행차에서 주빈의 뒤쪽에 배치되었다. 북, 장구, 해금, 대금, 주3로 편성되며, 이 편성은 오늘날 삼현육각과 같다. 세악수는 조선 후기 통신사 행렬도,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 등에 그림으로 보이며, 기록으로는 18세기 말에 유득공(柳得恭)『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4] 볼 수 있다. 『경도잡지』에 기록된 세악수가 연주했던 ‘작은 피리’는 조선 후기에 풍류방에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세피리인 것으로 보인다.

1884년 별기군(別技軍) 등 구식 군대의 해산과 신식 군악대의 창설에 밀려난 구식 군악대에 해당하는 취고수(吹鼓手)와 세악수 대부분이 해고되었고, 시종원(侍從院) 소속으로 남아 있던 취타내취(吹打內吹) 24명과 세악내취(細樂內吹) 24명이 1909년 장악과(掌樂課)[후에 이왕직아악부로 개칭]로 편입되었다. 대표적인 인물인 김계선(金桂善, 1891~1943)은 1906년 주전원(主殿院)의 내취(內吹)로 시작하여, 1909년 장악원 내취로 주5 1911년 이왕직 세악 내취에 주6되었다.

세악수들은 임금의 행차와 군대의 행진 때 종사하는 것이 주 임무였지만, 풍류방의 악사로 활동하기도 하였는데, 김홍도(金弘道, 1745~?)의 「무동(舞童)」 그림에서 전복(戰服)을 입은 악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헌종 대에 어영청 세악수로 활약했던 정약대(鄭若大)가[^7] 가곡 반주에 뛰어났다는 기록에서 세악수가 가곡 반주의 일부를 담당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 가곡 반주와 세악의 악기 편성이 동일하다. 이러한 점에서 20세기 초 병조 소속의 세악수가 장악원으로 편입됨으로써 세악수들의 연주 전통 일부였던 세악이 이왕직아악부의 이습회에서 세악이라는 음악 또는 악기 편성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악기 및 연주법

작은 음량으로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해금은 원산(遠山)을 가장자리로 옮겨 연주하고, 피리는 세피리를 사용한다. 대금은 저취(低吹)와 평취(平吹) 위주로 연주를 많이 사용하며, 장구는 채로 변죽을 울리는 주법을 사용한다. 거문고, 가야금, 양금, 단소는 음량이 크지 않으므로 연주법의 변화가 없다.

악곡

세악 편성으로 연주하는 악곡은 「현악영산회상(絃樂靈山會相)」 · 「별곡(別曲)」 · 「웃도드리[細還入]」 · 「수룡음(水龍吟)」 등이 있다. 세악수들이 삼현육각 편성으로 연주했을 것으로 보이는 취타, 길군악, 길타령, 별우조타령, 군악 등의 곡은 세악이라 부르지 않는다.

연주 복식

세악에 해당하는 악곡을 연주할 때는 속옷으로 바지저고리를 입고 겉옷으로는 두루마기를 입는다. 이러한 전통은 악곡이 풍류방과 세악수의 풍류방 활동이라는 연주 환경에서 근거를 유추할 수 있다. 1970~1980년대까지도 이러한 연주 복식이 지켜졌으나, 최근에는 대규모 공연장에서 연주하게 되면서 복식에 대한 기준이 없어지고 주8를 입기도 한다.

참고문헌

원전

『경도잡지(京都雜志)』

단행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장사훈, 『증보한국음악사』(세광음악출판사, 1986)
장사훈, 『국악총론』(세광음악출판사, 1985)
성경린, 『한국음악논고』(동화출판공사, 1976)
이성천, 『국악사』(국민음악연구회, 1976)

논문

이숙희, 「행악(行樂) 연주 악대의 종류와 성격: 궁중·관아·군영을 중심으로」(『한국음악연구』 35, 한국국악학회, 2004)
백대웅, 「18세기 음악환경과 전문예능인들의 음악활동 연구」(『한국음악사학보』 26, 한국음악사학회, 2001)
주석
주1

세악의 풍류를 하던 군악병. 우리말샘

주2

접두어로서 세(細)는 작은, 가늘은, 빠른, 높은 등의 의미로 쓰인다. 세(細)발 낙지는 작고 어린 낙지를, 세(細)피리는 음량이 작은 피리를, 세(細)영산은 빠른 영산회상을, 세(細)마치는 빠른 진양조를 가리키는 용어에서 세악의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다.

주3

이석호의 경도잡지 번역문에 장고는 요고로, 대금은 횡적으로, 피리는 큰피리와 작은 피리로 기록되어 있다.

주4

『경도잡지』에 동일한 편성을 타풍류(打風流)라 하고, 선전관청(宣傳官廳)에 예속된 것을 내취(內吹)라하고, 장용영(壯勇營) 등에 예속된 것을 세악수라하고, 이원(梨園, 장악원) 속악부에도 있다고 하였다.

주5

『글로벌세계대백과』에는 1908년으로 기록되었고, 국립국악원 소장 유인본 아악부 연혁에는 내취 48명이 장악과로 편입된 시기를 1909년으로 기록하였다.

주6

김계선은 대금독주(大笒獨奏)라는 새로운 연주 영역을 개척한 음악인으로, 장악원의 음악과 차별된 모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19년에 이왕직아악부를 사퇴하고, 1943년 타계할 때까지 방송과 연주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장안에서 가장 방송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간판스타라는 의미로 ‘김간판’이라는 별호도 얻었다.

주7

정약대는 인왕산에서 도드리를 연습한 일화로 유명한데, 이때 연습한 도드리는 현재의 「웃도드리」[「송구여지곡」]였을 것으로 보인다.

주8

홍주의는 장악원의 악인들이 연례에서 입던 관복이고, 장악원은 동반(東班)인 예조(禮曹)에 소속된 기관이다. 따라서 서반(西班)인 병조에 소속된 세악수는 홍주의를 입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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