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령구

  • 역사
  • 제도
  • 고려 후기
고려 후기, 몽골의 공주를 따라온 사속인(私屬人).
이칭
  • 이칭겁련구(怯憐口)
제도/관직
  • 설치 시기고려 후기, 원 간섭기
  • 소속몽골 공주 관할
  • 폐지 시기고려 후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보광 (가천대학교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08월 05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겁령구는 고려후기에 몽골의 공주를 따라온 사속인(私屬人)이다.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따라온 인후(印侯), 장순룡(張舜龍), 차신(車信)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공주의 심복이면서 충렬왕의 측근으로 활동하여 재상에까지 올라 정치적으로 위세를 떨쳤다. 고려와 몽골 관계에서 고려의 사신으로 외교 활동도 많이 하였다.

정의

고려 후기, 몽골의 공주를 따라온 사속인(私屬人).

설치 목적

겁령구는 ‘집안 아이’라는 뜻을 지닌 몽골어 게링구(Ke-ling-k’ou)의 한어(漢語) 표기로, 겁련구(怯憐口)라고도 한다. 겁령구는 충렬왕과 혼인하여 고려로 온 제국대장공주를 따라왔다. 이들은 공주의 위세에 힘입어 고려에서 높은 지위와 권력을 얻으면서 고려의 지배층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임무와 직능

처음에 제국대장공주를 따라온 겁령구가 몇 명인지 알 수 없으나, 몽골인 인후(印侯), 회회인(回回人) 장순룡(張舜龍), 고려인 차신(車信), 하서국인(河西國人) 노영(盧英)을 비롯하여 출신을 알 수 없는 정공(鄭公) 등 5명이 확인된다.

이들은 본래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나 자신의 측근으로 삼으려는 충렬왕의 의도에 따라 인후, 장순룡 등 고려식 이름을 하사받았다. 이들 중 인후, 장순룡, 차신 등 3인은 고려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라 고위 지배층의 위상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원 간섭기에 원의 부마국이 된 첫 왕이었던 충렬왕은 겁령구를 자신의 측근으로 삼고자 이들에게 사전(賜田)을 지급하기도 하고, 장군(將軍)을 비롯한 여러 관직을 왕이 직접 내리기도 하였다.

겁령구는 공주에게 사적으로 종속된 노복이었으므로, 기본적으로 공주의 심복 측근이었다. 그래서 공주의 명을 받아 충렬왕의 본처였던 정화궁주와의 불화를 쿠빌라이에게 보고하기도 하고, 정화궁주를 감금하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겁령구는 몽골 출신이고 공주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고려와 몽골 사이에 외교적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 등 고려와 몽골 관계에 일정하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대표적으로 인후에 대해 “(그는) 명을 전달하는 데에 능해서 충렬왕이 입조할 때마다 인후가 반드시 따라갔으며, 황제에게 아뢸 일이 있으면 반드시 인후를 보내 처리하였다”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은 국왕과 공주의 신임을 빙자하여 국정에 관여하기도 하고, 백성들의 토지와 재물을 약탈하는 등 그 피해가 매우 심하였다.

참고문헌

  • 원전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단행본

  • - 고명수, 『몽골-고려 관계 연구』(혜안, 2019)

  • 논문

  • - 임형수, 「고려후기 겁설제 운영 연구」(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8)

  • - 김보광, 「고려 충렬왕의 케시크제 도입과 그 의도」(『사학연구』 107, 한국사학회, 2012)

주석

  • 주1

    : 종살이를 하는 남자. 우리말샘

  • 주2

    : 몽고 제국의 제5대 황제로 중국 원나라의 시조(1215~1294). 묘호(廟號)는 세조. 중국 이름은 홀필렬(忽必烈). 칭기즈 칸의 손자로, 일본ㆍ중앙아시아ㆍ유럽에까지 원정하여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몽고인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우리말샘

  • 주3

    : ‘회흘’의 다른 이름. 우리말샘

  • 주4

    : 벼슬아치들이 조정의 조회에 들어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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