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명은 식독아(式篤兒). 하서국(河西國: 티베트계통의 黨項) 사람으로 충렬왕 때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 충렬왕비)의 겁령구(怯怜口: 私屬人)로 고려에 와서 귀화하였으며, 1277년(충렬왕 3)에 노영으로 이름을 고쳤다.
1277년(충렬왕 3) 중랑장으로 원나라에서 돌아와 “홍다구(洪茶丘)가 군사를 이끌고 고려국경에 들어오려 하다가 원나라 황제의 소환을 받았고, 또 귀부군(歸附軍) 500명을 칙명으로 돌아가게 하였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이듬해 장군으로 승진하여 대장군 조인규(趙仁規)와 함께 충렬왕의 귀국을 고하는 사절로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1279년에 공주(忽都魯揭里迷失)가 병이 나자 원나라에서 2명의 의사를 데리고 왔다. 성품이 온화하고 총민하였으며 문장에도 능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