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상의중추원사를 역임한 환관.
생애 및 활동사항
1392년(공양왕 4) 6월 조선이 개국할 때 이성계의 반대파로 몰려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의 탄핵을 받아 전판삼사사(前判三司事) 우현보(禹玄寶), 종실 남평군(南平君) 왕화(王和) 등 20여 명과 함께 유배되었다.
뒤에 기용되어 1398년(태조 7)에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가 되었다. 그러나 이성계의 넷째아들인 이방간(李芳幹)의 처의 아버지라 하여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 때 유배당하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조실록(太祖實錄)』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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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상의중추원사 임명 : 태조실록14권, 1398년(태조 7) 8월 13일. "왕후의 능을 지킨 이서와 강인부의 집을 정표하고 상을 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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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왕자의 난으로 유배 : 정종실록3권, 1400년(정종 2) 2월 4일. "삼성(三省)에서 박포, 강인부의 죄를 다시 청하니 이산으로 귀양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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