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

서울특별시 성북구 법정구역도
서울특별시 성북구 법정구역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서울특별시 북동부에 위치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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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서울특별시 북동부에 위치한 구.
개관

동쪽은 중랑구와 노원구, 서쪽은 종로구, 북쪽은 강북구, 남쪽은 동대문구와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6°58'~127°04', 북위 37°34'~37°38'이다. 면적은 24.58㎢이고, 인구는 45만 9275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0개 행정동(39개 법정동)이 있으며, 구청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삼선동5가에 있다.

자연환경

북한산 자락이 이어져 구릉을 형성한 저산성 구릉지로서 지질은 주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의 중앙은 추가령구조곡 남단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낮은 지대를 형성하고 있으며 하천 연안에는 국지적으로 충적층이 분포하고 있다.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北漢山, 836.5m) 자락이 고려대학교 뒤의 개운산(131m)으로 이어져 구릉을 만들고 있으며, 그 구릉에 아리랑고개와 미아리고개가 있다. 북한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정릉천 계곡과 성북천 계곡을 형성한다.

동쪽으로 중랑천이 남류하여 한강과 합류되고, 북악에서 발원하여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안암천(安岩川, 성북천이라고도 함)과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정릉천이 있다.

한강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편서풍대의 영향을 받아 연평균 기온은 13.3°C, 1월 평균기온은 -1.5°C, 8월 평균기온은 26.1°C이며, 연 강수량은 1,499㎜ 내외이다.

역사

이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 · 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이 한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고, 한강 유역의 하남시 미사리 유적이나 강동구 암사동 유적에서 선사시대 인류가 살았던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에도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고대국가로서 마한이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나 서기전 18년 온조(溫祚)가 한강 유역에 백제국(伯濟國)을 건국하고 점차 마한제국을 병합하여 백제(百濟)로 성장하였다. 백제는 475년 고구려의 남하로 수도를 공주로 옮길 때까지 500여 년간 한강 유역을 지배하였다. 고구려 장수왕은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여 개로왕을 살해함으로써 백제를 한강 유역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이 일대에 북한산군(北漢山郡)을 설치하여 80여 년간 다스렸다.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체결하여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동맹을 파기하고 이 일대를 독차지하여 북한산주(北漢山州) 혹은 신주(新州)를 두어 관리하였다. 통일을 달성한 후 신라는 전국을 9주로 나누면서 한강 유역을 한산주(漢山州) 또는 한주(漢州)로 개칭하고 한강과 접하고 있는 서울 지역에는 따로 한양군을 두었다. 이로 인해 성북구는 한산주의 한양군에 속하게 되었다.

후삼국시대 ‘성북 지역’은 양길의 부하였던 궁예(弓裔)가 895년 한산주 관내의 10여 성을 복속시킴에 따라 궁예의 휘하에 들어갔다가 왕건(王建)이 건국한 고려에 귀속되었다. 이 일대는 고려 초 양주(이때의 양주는 지금의 양주군이 아니라 고려 초 서울의 이름이다), 문종 이후 충렬왕 때까지는 남경(南京), 충선왕 이후 고려 말까지는 한양이라 불리었다.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설치하여 지방통치체제를 정비할 때 양주목에 속하였고, 1018년(현종 9)에는 지주사(知州事)로 격하되어 광주목(廣州牧)의 관내에 예속되었다. 이어 1067년(문종 21) 한강 북부지역에 남경을 설치하면서 서경(西京) · 동경(東京)과 함께 삼경체제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1068년에는 남경이궁(南京離宮)을 설치하고, 남경으로의 천도론이 제기되어 1101년(숙종 6) 9월 남경개창도감을 설치하여 본격적인 남경 궁궐 후보지를 물색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104년 지금의 청와대 부근에 새 궁궐이 낙성되어 왕이 친행해 점검하는 등 거의 천도가 실현될 단계까지 이르렀으나, 이듬해 왕이 죽자 실천되지 않았다.

그 뒤 1308년(충렬왕 34)에 한양부(漢陽府)로 개칭되었고, 유수를 윤으로 고치는 외에도 판관과 사록 등의 관직을 두었는데 이는 그 지위가 격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공민왕 때 이르러 원과의 기반을 끊고 과거의 폐정을 혁신함과 동시에 새로 도읍을 옮길 것을 계획했는데, 이때 천도의 유력한 후보지로 한양이 물망에 올랐고, 왜구의 침략으로 한양천도론이 고개를 들었다. 우왕과 공양왕 때는 일시 한양천도가 단행되기도 했으나 다시 개경으로 환도했다가 조선의 개창을 계기로 천도문제는 최종적인 결정을 보게 되었다.

성북 지역에는 고려시대 남경의 영화를 보여주듯 보문사(普門寺) · 미타사(彌陀寺) · 경국사(慶國寺) 등 고려시대에 창건된 사찰들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고려 말부터 대두되던 한양 천도론은 조선이 개창되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개경에 정치적 기반이 없었던 태조 이성계는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신도읍이 필요했고, 이러한 요건을 갖추고 있었던 곳이 바로 한양이었다. 여러 지역이 도읍 후보지로 거론되었으나 태조는 1394년(태조 3) 8월 24일 한양을 새로운 도읍지로 확정하였다. 이어 9월 1일 궁궐 건설의 실무를 담당 추진하기 위한 기관인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설치하고, 9월 9일에는 한양에 대한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궁궐 · 종묘 · 사직과 도로의 건설, 각종 관아의 배치 등 기본계획을 작성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5일 천도를 단행하여 3일 후인 10월 28일 한양에 도착하였다. 이어 이듬해 12월에 조선시대 정궁(正宮)인 경복궁이 완공되어 비로소 궁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한양부를 한성부(漢城府)라 고치고 이듬해 9월에는 도성과 문루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한성부의 행정구역을 동 · 서 · 남 · 북 · 중 5부(部) 52방(坊)으로 나누어 도시 규모를 정비하였다. 이로써 명실상부한 조선의 수도로서 한성이 탄생된 것이다.

성북구 일대는 조선시대 한성부 성저십리(城底十里) 이내의 지역으로 후기에는 숭신방(崇信坊)과 인창방(仁昌坊)에 속하였다. 특히 성북구는 도성의 북쪽지역이라는 지리적 위치에서 지명이 유래되었고, 서울의 4소문 가운데 하나인 혜화문을 지나 원산에 이르는 동북방 간선도로가 이 지역을 관통하고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여진과의 통로가 되었음은 물론 노원구 일대의 누원점(樓院店)과 연계되어 상인들이 통행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이 외에 동활인서 등 빈민구제기관이 설치되어 운영되기도 하였으며, 삼선평(三仙坪)에는 군사 훈련이 실시되고 성곽 수비를 위한 어영청(御營廳)의 북창(北倉)이 있었다.

1911년 4월 1일 5부 8면제가 실시됨에 따라 이 지역은 경성부 관할의 숭신면(崇信面)과 인창면(仁昌面)이 되었고, 1914년에는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崇仁面)의 관할 하에 있었다. 1936년 경성부의 구역이 확장되면서 숭인면의 23개 리 가운데 14개 리가 경성부에 편입되어 동부출장소의 관할 하에 들어갔고, 나머지 9개 리는 그대로 고양군 숭인면으로 남게 되었다. 1943년 출장소 대신 구(區)제도가 실시되면서 동부출장소는 동대문구역소와 성동구역소로 나뉘었고, 이 지역은 동대문구역소에 속하게 되었다.

1945년 10월 16일 구역소를 구청으로 하고 구장(區長)을 구청장(區廳長)으로 개칭하면서 동대문구역소도 동대문구청으로 바뀌게 되었다. 1949년에는 경기도 고양군에 속했던 숭인면 전 지역이 서울시 구역에 편입되었고, 동대문구 관내의 일부와 숭인면 지역을 합하여 성북구가 탄생되었다.

1955년에는 종래의 동회(洞會)를 동(洞)으로 개칭하고 각 구청에 행정동을 따로 정하여 행정업무를 담당하도록 함에 따라 성북구에는 23개의 행정동이 있었다. 1962년에는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蘆海面, 노원구 일대)이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성북구의 관할구역이 대폭 확장되어 1970년에는 45개의 행정동으로 증가되었다. 그러나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구되면서 성북구의 관할구역은 대폭 축소되었고, 1975년에는 성북구의 석관동, 종암동, 안암동4·5가의 일부가 동대문구로, 성북구 정릉동과 하월곡동 일부는 도봉구로, 동대문구 보문동1~7가와 신설동 일부는 성북구로, 도봉구 미아동 일부는 성북구로 각각 편입 조정이 이루어짐에 따라 성북구에는 모두 32개의 행정동이 있었다. 이후 인구증가에 따라 분동이 이루어져 성북구에는 39개의 법정동과 20개의 행정동이 있다.

유물 · 유적

사적은 서울 한양도성(사적, 1963년 지정), 서울 선잠단지(사적, 1963년 지정), 서울 고려대학교 본관(사적, 1981년 지정), 서울 의릉(사적, 1970년 지정), 서울 정릉(사적, 1970년 지정)이 있다. 그 외 성락원(명승, 2020년 지정)이 있고, 국보와 보물은 간송미술관과 고려대학교 박물관 및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는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국보, 1962년 지정),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국보, 1973년 지정),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국보, 1992년 지정),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국보, 1997년 지정),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국보, 1962년 지정), 청자 상감운학문 매병(국보, 1962년 지정), 훈민정음(국보, 1962년 지정), 동국정운 권1, 6(국보, 1962년 지정),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국보, 1962년 지정), 금동삼존불감(국보, 1962년 지정), 청자 오리모양 연적(국보, 1962년 지정),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국보, 1970년 지정) 등이 소장되어 있다.

안암동의 고려대학교에는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국보, 1974년 지정), 혼천의 및 혼천시계(국보, 1985년 지정), 동궐도(국보, 1989년 지정), 용감수경 권3~4(국보, 1997년 지정)이 소장되어 있고, 성북동의 귀면 청동로(국보, 1972년 지정)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는 백자 박산형뚜껑 향로(보물, 1963년 지정), 금보(보물, 1963년 지정), 금동여래입상(보물, 1963년 지정), 금동보살입상(보물, 1963년 지정), 청자 상감포도동자문 매병(보물, 1963년 지정), 분청사기 박지철채화문 병(보물, 1963년 지정), 괴산 외사리 승탑(보물, 1974년 지정), 문경 오층석탑(보물, 1974년 지정), 분청사기 상감모란문 반합(보물, 1963년 지정), 청자 상감국화모란당초문 모자합(보물, 1963년 지정) 등의 보물이 소장되어 있다.

안암동의 고려대학교에는 홍무정운역훈 권3~16( 보물, 1965년 지정), 삼국유사 권3~5(보물, 2002년 지정), 중용주자혹문( 보물, 1981년 지정), 동인지문사육 권1~6(보물, 1981년 지정), 동인지문사륙 권7~9(보물, 1981년 지정), 수선전도 목판(보물, 1986년 지정) 등이 소장되어 있다.

그리고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안중근의사 유묵-백인당중유태화(보물, 1972년 지정), 안중근의사 유묵-극락(보물, 1972년 지정), 월인석보 권20(보물, 2006년 지정), 근사록(보물, 2006년 지정), 유숙필 매화도(보물, 1994년 지정)가 있고, 서울 경국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1983년 지정)이 있다. 그 외 성신여대에는 대동여지도(보물, 1985년 지정)가 있다.

사찰로 정릉동의 봉국사(奉國寺) · 경국사(慶國寺), 돈암동의 신흥사(新興寺), 보문동의 미타사(彌陀寺) · 보문사(普門寺), 안암동의 개운사(開雲寺) 등은 고려시대 또는 조선 초기의 사찰로 전해지고 있다. 이 밖에 동소문동의 청룡암, 장위동의 백운암, 안암동의 대원암 · 칠성암 등 작은 절도 많이 있다. 보문사 대웅전의 신중도(神衆圖)와 묘승전(妙勝殿)의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흥천사의 극락보전(極樂寶殿)과 명부전(冥府殿), 보타사의 마애불 등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고려대학교 박물관에 사영 김병기 일가 옷(국가민속문화재, 1968년 지정)과 홍진종 의복(국가민속문화재, 1980년 지정)이 소장되어 있다. 사영 김병기 일가 옷은 1968년, 홍진종 의복은 1980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유산으로 국민대학교 내에 장교동 한규설 가옥, 성북동에 성북동 이종석 별장와 상허 이태준 가옥, 장위동의 장위동 김진흥 가옥가 있다. 장교동 한규설 가옥, 성북동 이종석 별장, 상허 이태준 가옥, 장위동 김진흥 가옥은은 1977년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에 삼층석탑과 석조팔각승탑, 석 비로자나불좌상 · 석불입상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1974년, 석조팔각승탑, 석 비로자나불좌상, 석불입상은 1975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보문사에 보문사 신중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6년 지정), 보문사 지장시왕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6년 지정), 보문사 석가불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6년 지정)가 있다.

돈암동 흥천사에는 흥천사 극락보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과 흥천사 명부전(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이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안암동에는 보타사 마애좌상(보물, 2014년 지정)과 삼선동의 삼군부 총무당(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이 있다. 성북동 극락보전에는 팔정사 목 보살좌상(대세지보살)(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004년 지정) 등이 지정되어 있다.

삼선동의 대금산조는 이생강이 보유자이며, 1965년에 지정되었다. 성북동의 태평무는 강선영이 보유자이며 1988년에 지정되었다. 그리고 성북동의 매듭장은 김은영(金銀暎)이 보유자이며, 1996년에 지정되었다. 대금산조는 1971년, 태평무는 1988년, 매듭장은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교육 · 문화

이 지역은 일찍부터 근대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1909년 성북리에 설립된 삼산학교(三山學校)를 비롯하여 1922년 종암동에 숭인공립보통학교, 1924년 사립인 인창보통학교, 1934년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1939년 경성고등상업학교(훗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등 많은 학교가 설립되어 교육문화가 일찍부터 자리 잡았던 곳이다.

이후에도 인구 증가와 함께 꾸준히 학교가 설립되어 2015년 현재 초등학교 29개교, 중학교 18개교, 고등학교 13개교, 특수학교 1개교가 있다. 대학교는 고려대학교 · 국민대학교 · 동덕여자대학교 · 서경대학교 · 성신여자대학교 · 한성대학교 등 6개가 있으며 전문대학교도 1개가 있다. 서울의 여러 구 가운데 많은 대학이 위치하고 있어 교육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현대적 문화공간으로는 동선동5가의 성북한국문화센터, 돈암동의 성북구민회관, 상월곡동의 성북정보도서관, 성북종합레포츠타운 등에서 각종 문화활동을 향유할 수 있다. 보다 전문적인 공간으로는 석관동에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있어 미술원, 영상원, 연극원, 전통예술원, 무대장치제작실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박물관으로는 고려대학교박물관,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 동덕여자대학교박물관, 국민대학교박물관 등 대학박물관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1934년 개관한 고려대 박물관은 6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국보와 보물 등 역사 · 고고 · 미술분야에 걸쳐 약 10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1977년에 발족한 동덕여대 박물관은 민족문화 유산 가운데 여성 전통 민속공예와 의상자료, 바느질 자료 등 여성의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 · 보관 · 전시하고 있다. 1966년 생활과학박물관으로 출발한 성신여대 박물관은 조선시대의 고지도, 서화류, 공예품 등 민족의 생활문화에 나타난 문화유산을 집중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국민대학교박물관은 시대별 전시실과 장르별 전시실로 나누어 고고 · 미술 · 공예 · 민속 · 역사 등 다양한 자료를 폭넓게 수집 · 전시 · 교육하고 있으며, 특히 설촌고서와 암각화자료는 주목할 만하다.

미술관으로는 운우판화미술관과 간송미술관이 유명하다. 성북동에 2001년 설립된 운우판화미술관은 운보 김기창 화백의 판화작품과 그의 아내 박래현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1938년 전형필(全鎣弼)이 설립한 간송미술관은 중심건물인 보화각에 국보급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1997년 동소문동1가에 설립된 성북문화원은 선잠제 · 도당제 · 동망제 등 지역의 고유문화를 계발 보급하고, 향토사의 조사와 연구는 물론 각종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영화관으로는 돈암동에 아리랑시네센터가 있다.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개봉관과 영화갤러리 미디어센터를 갖추고 종합적인 영상 교육 문화공간으로 지역주민에게 다양한 정보와 문화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영화관은 211석 규모의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로 영화상영은 물론 콘서트와 뮤지컬 등 공연예술을 위한 다목적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전통문화 행사로는 성북동의 선잠단지에서 행하는 선잠제가 있고, 성북구민의 날을 맞이하여 매년 아리랑축제를 개최한다.

스포츠시설로는 성북구민체육회관을 비롯하여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에서 관리하고 있는 성북종합레포츠타운, 개운산스포츠센터, 북악골프센터 등이 자리하고 있다. 월곡동에 있는 성북구민체육관은 헬스클럽, 테니스클럽, 축구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성북종합레포츠타운은 휴식과 운동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쾌적성을 부여함을 목표로 국내 최고 수준의 종합스포츠 전문시설을 갖추었다. 자연채광과 전망을 특별히 고려한 수영장과 헬스장이 있고, 4층에 위치한 골프연습장은 비거리 30야드, 29타석의 밝고 쾌적한 분위기와 함께 최첨단의 스윙분석기를 통한 과학적인 골프트레이닝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되었다. 1층에는 스쿼시장과 어린이 체육관이 있어 다양한 스포츠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으며, 취미 · 스포츠문화교실에서는 건강 · 미술 · 교양 등의 다양한 문화강좌를 열고 있다.

개운산스포츠센터에도 수영장과 헬스장을 갖추어 지역민의 건강한 생활에 일조하고 있으며, 북악스카이웨이 산자락에 있는 북악골프장은 52타석의 자동화 타석기계, 퍼팅연습장, 벙커연습장, 레스토랑, 골프용품점, 303개의 개인락카를 비치하여 보다 편리하고 안락한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 외에도 정릉동에 있는 정릉북악생활체육시설은 테니스장, 게이트볼장, 배드민턴장을 갖추고 있다.

민속

정월 초하루에는 설날을 맞아 각 가정에서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는 풍속이 남아 있다. 정월 열나흘에는 오곡밥 먹기, 정월 대보름의 부럼깨기와 더위팔기, 윷놀이, 연날리기 등이 행해진다. 사월 초파일에는 절에 가서 연등달기, 칠월 복중에 개고기와 삼계탕 먹기, 추석 차례와 성묘가기, 동지 때 팥죽 먹기 등의 세시풍속이 펼쳐진다. 민속놀이로는 단오 때 구민들이 모두 모여 대대적인 민속놀이 행사를 개최하고, 각 동 대항 민속경연대회를 비롯하여 마당놀이, 줄타기, 널뛰기 등 다채로운 단오행사가 펼쳐진다.

설화 · 민요

이 지역에는 지명이나 암석과 관련된 전설이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안암천의 다리와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옛날 이 지역에는 채소를 팔아 먹고 사는 안감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이 사람이 채소를 도성 안으로 가져가 다 팔고 집으로 들어오다가 동대문 밖 주막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점잖은 영감이 술을 마신 다음 술값을 치르려고 하였으나 주머니에 돈이 없었다. 안감은 몇 푼 안 되는 술값 때문에 노인이 야단맞는 것을 보고 대신 술값을 치러주었다. 영감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채소를 팔러 도성 안으로 들어오거든 자기 집을 찾아 달라고 하면서 집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며칠 후 안감이 도성 안에 들어가 채소를 다 팔고 영감이 사는 집에 찾아가니 솟을 대문이 있는 큰 집이었다. 그 영감이 나와서 반가이 맞으면서 주안상까지 차려 대접하고 은공을 갚겠으니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였다.

안감이 사양을 해도 계속 다그치니까 안감이 안암동은 서쪽으로 성북동에서 흐르는 개천이 있고, 동쪽으로는 영도사(지금의 개운사)에서 흘러 내리는 개천이 있는데, 비만 오면 두 개천의 물이 불어 안암동은 섬같이 되어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으니 이 개천에 다리나 하나 놔 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원이라면 자기의 이익 추구에만 집착하는데 이 사람은 채소 장수로서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일을 말하였다. 이에 영감은 감동하여 흔쾌히 승낙하고 동네 앞에 다리를 놓아 주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은 이 다리를 안감의 이름을 따서 안감내다리라고 하였고, 이 개천을 안감내라고 부르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외에도 성북동 숙청문 밖 미암(米岩)에서 쌀이 나왔다는 쌀바위 이야기, 비옥한 토지에서 학이 나온 후 박토(薄土)가 되었다는 학더미 이야기,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옥녀봉 이야기 등이 전하고 있다.

산업 · 교통

토지의 33.3%가 임야이고 경지는 전체 토지의 0.5%이다. 대지 41.7%, 하천 2.1%, 학교용지 6.3%, 도로 11.1%, 철도용지 0.5%로 전체 토지에서 임야와 대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산업 인구 가운데 제조업 종사자는 10.8%, 건설업 3.6%, 도소매업이 17.3%, 숙박 및 음식업이 13.7%, 운수업 7.8%, 금융 및 보험업 2.3%, 부동산 및 임대업 3.2%, 사업서비스업 5.8%, 교육서비스업이 15.9% 등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전체 사업체수 가운데 1~4명의 종사자를 가지고 있는 사업체가 전체의 88.6%의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1,000명 이상의 사업체는 3개에 불과하다.

예로부터 도성의 북쪽지역이었기 때문에 서울의 4소문 가운데 하나인 혜화문을 지나 원산에 이르는 동북방 간선도로가 이 지역을 관통하고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여진과의 통로가 되었음은 물론 노원구 일대의 누원점(樓院店)과 연계되어 상인들이 통행하는 길목이기도 했다. 따라서 국가의 공무를 전하는 파발이나 특산물을 수송하는 상인, 금강산을 여행하고 싶은 여행객 등이 붐비던 지역이다. 주요 간선도로인 미아로 · 동소문로 · 종암로를 중심으로 도로가 확장되어 있고, 지하철시대가 개막되면서 1985년 지하철 4호선 개통과 함께 2000년 지하철 6호선의 개통으로 서울시내는 물론 한강 이남으로의 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성북구의 주요 간선도로는 북쪽에 북한산국립공원이 막고 있어 그 아래에서 동서남북으로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다. 도로의 크기에 따라 광로(廣路) · 중로(中路) · 소로(小路)를 모두 합하면 총연장은 621㎞에 달하며, 도로 포장률은 99.98%이다.

폭 40m 이상의 넓은 도로는 성북구를 동서로 관통하는 순환도로를 비롯하여 미아로 · 동소문로 · 종암로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도심과 연결되는 동소문로와 미아로는 일찍부터 개통되어 있었으며, 정릉길이 북악터널의 개통과 함께 북부 서울을 동서로 관통하는 대로가 되었다. 이 외에 아리랑고개길, 삼양로, 인수로, 보문로, 성북동길, 도봉로, 우안길, 월곡길, 이문로, 화랑로, 들곶이길 등의 간선도로가 연결되어 교통의 편리를 더하고 있다.

지하철 4호선은 당고개역에서 오이도까지 48개 역을 운행하는 전철로 1980년 착공하여 1985년 개통되었으며, 성북구를 지나는 역은 길음역, 성신여대입구역(돈암역), 한성대입구역(삼선교)이 있다. 지하철 6호선은 봉화산역에서 역촌역까지 38개 역을 운행하는 전철로 1994년에 착공하여 2001년 완전히 개통되었으며, 성북구 지역은 2000년에 공사가 완료되었다. 성북구를 지나는 6호선 구간은 석계역, 돌곶이역, 월곡역(동덕여대), 고려대역(종암), 안암역(고려대병원앞), 보문역이 있다. 2017년 9월 경전철 우이신설선이 개통되었다. 성북구를 지나는 우이신설선 구간은 성신여대입구역, 보문역, 정릉역, 북한산보문역이 있다.

관광

이 지역은 북쪽에 북한산국립공원을 두고 있어 최고의 관광지로 북한산을 꼽을 수 있고, 북한산과 연결되어 있는 정릉계곡도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던 명소이다. 또한 북한산 자락에 들어선 경국사 · 봉국사 · 정법사 · 흥천사 등 각종 호국사찰과 미타사 · 보문사 · 개운사 등도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다. 또한 도성의 4대문인 숙정문과 혜화문을 만날 수 있고, 석관동에 조선 20대 왕인 경종과 그의 비를 함께 모신 의릉(懿陵)과 정릉동에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를 모신 정릉(貞陵)도 찾아볼 만한 곳이다.

그리고 성북구 관내의 국보와 보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과 고려대학교박물관, 그리고 각각의 특징적인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국민대 · 성신여대 · 덕성여대 등의 대학박물관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이 지역의 성북동에는 조선시대의 아름다운 정원인 성낙원(城樂園)이 있다. 소나무 · 참나무 · 다래나무 · 등나무 등 우리나라 고유의 조경수가 연못과 산비탈에 우거져 있고, 암벽과 폭포 뿐만 아니라 암반을 막아 만든 연못에는 송석정(宋石亭)이라는 정자와 함께 많은 암각글씨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이 지역을 특별하게 대표하는 먹거리는 없지만 돈암동 패션거리 일대는 음식점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주로 젊은이들이 운집하는 곳이다. 전통문화 행사로는 성북동의 선잠단지에서 행하는 선잠제가 있고, 성북구민의 날을 맞이하여 매년 아리랑축제를 개최한다.

동(洞)
  1. 길음동(吉音洞)

성북구의 중북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골짜기가 길게 놓여있는 동네라는 뜻의 기리물골, 기레미골, 기리묵골의 한자 음을 빌려 쓴 데서 유래한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崇信坊, 城外)에 속하였고, 1895년에는 한성부 동서(東署) 숭신방 동소문외계(東小門外契) 미아리(彌阿里)로 칭하였다. 1911년 경성부 숭신면 미아리로 칭하다가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미아리가 되었다. 광복 후 1949년 서울시 성북구 미아리로 불리다가 1950년에 미아동으로 개칭되었으며, 1959년 미아1동 지역이 길음동이 되었다. 행정동은 길음1동에서 3동까지 3개 동사무소가 있다. 문화체육시설로서 성북문화회관이 있고,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있다. 지하철 4호선의 길음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1. 돈암동(敦岩洞)

성북구의 중앙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미아리고개의 옛 이름이 ‘되너미고개’이며 이것을 한자로 옮겨 돈암현(敦岩峴)이라 한 데서 비롯되었다. 조선시대에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하였고, 1895년에는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소문외계 돈암리(敦岩里)로 칭하였다. 1911년 경성부 숭신면 돈암리로 칭하다가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가 되었다. 1943년 구제도가 시행될 때 동대문구에 속했으며, 광복 후 돈암동이 되었고, 1949년 성북구 법정동이 되었다. 행정동은 돈암1동과 돈암2동이 있다. 학교로는 성신여자대학교를 중심으로 성신초등학교, 성신여중고, 성신여고교가 집중되어 있고,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에는 많은 고지도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1. 동선동(東仙洞)

성북구의 중앙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1949년 동소문동(東小門洞)과 삼선동(三仙洞)에서 각각 한 글자를 따서 이루어진 것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하였고, 1895년에는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소문외계 돈암리로 칭하였다. 1911년 경성부 숭신면 돈암리로 칭하다가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가 되었다. 1943년 구제도가 시행될 때 동대문구에 속했으며, 광복 후 돈암동이 되었고, 1949년 성북구의 돈암동이 되었다. 이해 행정동으로 동선동이 생겼으며, 1963년에는 동선동1가에서 동선동5가까지 5개의 법정동으로 분리되었다. 따라서 동선동1가에서 동선동3가까지 법정동의 행정은 동선1동사무소에서 담당하며, 동선동4가와 동선동5가의 행정은 동선2동사무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동선동2가에 성북구청별관이 있으며, 동선동5가에는 문화공간으로 성북한국문화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을 이용할 수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1. 동소문동(東小門洞)

성북구의 중앙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1949년 서울 4소문의 하나인 동소문(東小門)의 이름을 따서 제정된 것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崇信坊, 城外)에 속하였고, 1895년에는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소문외계 돈암리로 칭하였다. 1911년 경성부 숭신면 돈암리로 칭하다가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가 되었다. 1943년 구제도가 시행될 때 동대문구에 속했으며, 광복 후 돈암동이 되었다. 1949년 성북구의 돈암동으로 편입되면서 행정동으로 동소문동이 생겼으며, 1963년에는 동소문동1가에서 동소문동7가까지 모두 7개의 법정동으로 분리되었다. 동의 행정업무는 동소문동1가에서 동소문동4가까지는 동소문동사무소에서, 동소문동5가는 동선1동사무소에서, 동소문동6가와 동소문동7가는 동선2동사무소에서 각각 담당하였다. 동의 남쪽으로 동소문로가 있고,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동소문동1가에는 문화시설인 성북문화원이 있으며, 선잠제와 동망제 등 지역의 고유문화를 계승 발전하고 있다. 동의 중앙으로 동소문로가 있고, 지하철 4호선 성신여대입구역과 한성대입구역을 이용할 수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1. 보문동(普門洞)

성북구의 남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보문동3가 168번지에 있는 보문사(普門寺)의 이름을 딴 것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하였고, 1895년에는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문외계(東門外契) 신설동(新設洞)이라 칭하였다. 1911년 경성부 숭신면 신설계(新設契) 탑동(塔洞) 우산리(遇仙里)로 칭하다가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신설리가 되었다. 1943년 구제도가 시행될 때 동대문구에 속했으며, 광복 후 신설동이 되었고, 1955년 신설동에서 분리되어 보문동이라 칭하였다. 1975년에는 동대문구에서 성북구로 편입되었고, 이때 보문동이 보문동1가에서 보문동7가까지 모두 7개의 법정동으로 분리되었다. 그러나 모든 법정동의 행정업무는 보문동사무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청계천의 지류인 안암천이 흐르고, 지하철 6호선 보문역과 창신역을 이용할 수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1. 삼선동(三仙洞)

성북구의 중남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혜화문 밖 동소문동, 동선동 일대를 포함한 넓은 평평한 들판을 삼선평(三仙坪)이라 하였기 때문에 유래한 것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하였고, 1895년에는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문외계 삼선평이라 칭하였다. 1911년 경성부 숭신면 삼선평으로 칭하다가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돈암리로 흡수 통합되었다. 1943년 구제도가 시행될 때 동대문구에 돈암정에 속했으며, 광복 후 돈암동이 되었다. 1949년 동대문구에서 성북구의 돈암동으로 편입되면서 행정동으로 삼선동이 생겼다. 1963년에는 삼선동1가에서 삼선동5가까지 모두 5개의 법정동으로 분리되었으며, 삼선동1가와 삼선동2가의 행정은 삼선1동사무소에서, 삼선동3가에서 삼선동5가까지의 행정은 삼선2동사무소에서 각각 담당하고 있다. 삼선동2가에는 한성대학교가 있으며, 삼선동5가에는 성북구청과 성북경찰서 등 관공서가 위치하고 있고, 보문로와 함께 지하철4호선 한성대입구역을 이용할 수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1. 상월곡동(上月谷洞)

성북구의 동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이 지역의 반달 모양을 한 산과 연해 있는 마을을 다릿굴(골)이라 하였고 그 위쪽을 웃다리골(上月谷里)이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하였고, 1895년에는 한성부 동서 인창방 동소문외계 월곡상리라 칭하였다. 1911년 경성부 인창면 월곡상리로 칭하다가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상월곡리가 되었다. 1949년 서울시 성북구 숭인출장소에 편입되었다가 1950년 상월곡동으로 명칭이 개정되었으며, 1973년 성북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행정은 상월곡동사무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동덕여자대학교가 하월곡동과 상월곡동에 걸쳐 있다.

  1. 하월곡동(下月谷洞)

성북구의 동북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이 지역의 반달 모양을 한 산과 연해 있는 마을을 다릿굴(골)이라 하였고 그 아래쪽을 아랫다리골(下月谷里)이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하였고, 1895년에는 한성부 동서 인창방 동소문외계 월곡하리라 칭하였다. 1911년 경성부 인창면 월곡하리로 칭하다가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하월곡리가 되었다. 1949년 서울시 성북구 숭인출장소에 편입되었다가 1950년 하월곡동으로 명칭이 개정되었으며, 1973년 성북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행정동은 월곡1동에서 4동까지 4개 동이 있다. 문화체육시설로서 성북구민체육회관이 있고, 동덕여자대학교가 하월곡동과 상월곡동에 걸쳐있다.

  1. 석관동(石串洞)

성북구의 동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이 지역의 땅 이름인 돌곶이를 의역(意譯)하여 한자로 표현한 것이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崇信坊, 城外) 장위리계(長位里契)에 속하였고, 1895년 한성부 동서 인창방 동소문외계 석관리(石串里)가 되었다. 1911년 경성부 인창면이 되었다가 1914년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 속하였다. 1949년 서울시 성북구 숭인출장소에 편입되었다가 1950년 석관동으로 명칭이 개정되었으며, 1973년 성북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행정동은 석관1동과 석관2동사무소가 있다. 동쪽으로 동부간선도로와 중랑천이 우이천과 합류되며, 북쪽으로는 북부순환도로가 지나고 있고 전철 1호선 석계역이 가까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으로 서울 의릉이 있고, 그 북쪽에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비롯하여 전통예술원, 미술원, 영상원스튜디오 등 문화시설이 있다. 능 남쪽으로는 국가정보대학원이 자리하고 있다.

  1. 성북동(城北洞)

성북구의 서남부에 위치한 동으로 행정은 성북1동과 2동사무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동명은 조선시대 도성 수비를 위한 어영청(御營廳)의 북둔(北屯)이 도성 북쪽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붙여졌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하였고, 1895년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소문외계 성북동이었다. 1911년 경성부 숭신면 성북동이 되었다가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가 되었다. 1936년 경성부 성북정(城北町)이 되었다가 1943년 동대문구에 편입되었고, 1946년에 성북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949년 성북구에 편입될 때 법정동으로 성북동과 성북동1가로 분리되었다. 성북동에는 고급 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일찍부터 외국대사관저가 밀집되어 있었는데 지금까지 호주 · 그리스 · 베네주엘라 · 스웨덴 · 폴란드 · 노르웨이 · 콜롬비아 · 엘살바도르 · 스리랑카 · 핀란드 · 아일랜드 등의 대사관저가 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1. 안암동(安岩洞)

성북구의 동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예전에 여러 명이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넓은 바위가 있었다 하여 이 바위 이름을 ‘앉일바위’라 하였고, 이것을 한자로 안암(安岩)이라 한데서 연유한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하였고, 1895년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문외계 원리(園里), 궁리(宮里), 상리(上里), 중리(中里)로 칭하였다. 1911년 경성부 숭신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가 되었다. 1936년 경성부에 편입된 후 1943년 동대문구 안암정(安岩町)이 되었고, 1946년 안암동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49년 동대문구에서 성북구로 편입되었으며, 이때 안암동1가에서 안암동5가까지 5개의 법정동으로 분리되었으며, 모든 행정업무는 안암동사무소에서 담당하고 있다. 청계천의 지류인 안암천이 지나고 있으며, 안암동1가에는 대한지적공사 성북구출장소가 있다. 안암동5가에는 고려대학교와 고려대학교부속안암병원이 위치하고 있어 학생들과 시민이 붐비는 곳이며, 지하철 6호선 안암역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시설로는 고려대학교 내에 박물관이 있고, 아이스링크와 운동장 등의 체육시설을 즐길 수 있다.

  1. 장위동(長位洞)

성북구의 동북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마을 뒤 장위산(獐位山)의 이름을 따서 장위동(長位洞)이 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속하였고, 1895년 한성부 동서 인창방 동소문외계 장위리로 칭하였다. 1911년 경성부 인창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에 속하였다. 1949년 서울시 성북구 숭인출장소 장위리로 편입되었고, 1950년 장위동이 되었으며, 1973년에 성북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1. 정릉동(貞陵洞)

성북구의 동북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이 마을에 조선 태종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康氏)의 정릉(貞陵)에서 연유되었다. 조선시대 한성부 동부 숭신방 정릉계(貞陵契)에 속하였고, 1895년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소문외계 대정릉동(大貞陵洞), 소정릉동(小貞陵洞), 청수동(淸水洞), 손가정(孫哥亭) 지역으로 칭했다. 1911년 경성부 숭신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정릉리가 되었다. 1949년 서울시 성북구 정릉리로 편입되어 1950년에 정릉동이 되었다. 북한산국립공원이 접하고 있어 정릉계곡을 따라 보국문에 오를 수 있으며, 봉국사와 경국사 등의 전통사찰이 있다. 대학은 국민대학교가 있으며, 대일외국어고등학교가 있다. 체육시설로는 북악골프연습장이 있다.

  1. 종암동(鍾岩洞)

성북구의 서남부에 위치한 동이다. 동명은 고려대학교 뒷산에 북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한자로 종암(鍾岩, 또는 敲岩)이라 한 데서 연유한다. 조선시대에 한성부 동부 숭신방 종암리계(鍾岩里契)였고, 1895년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문외계 대종암(大鍾岩), 소종암(小鍾岩) 지역으로 칭했다. 1911년 경성부 숭신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종암리가 되었다. 1943년 동대문구 종암정(鍾岩町)이 되었다가 1946년에 종암동으로 바뀌었으며, 1949년 성북구 종암동이 되었다. 동의 동쪽으로 정릉천을 따라 내부순환도로가 지나고 있고, 지하철 6호선이 있으며, 동의 중앙으로 종암로가 개설되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관공서로는 성북소방서와 성북구의회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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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5)
『경조부지』(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북한지』(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서울의 하천』(이상배, 2000)
『서울의 전래동명』(이재곤, 백산출판사, 1994)
『성북구지』(성북구청, 1993)
『서울육백년사 민속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90)
『서울육백년사 문화사적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서울육백년사』1~6(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77~2006)
『한경지략』(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56)
『동국여지비고』(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56)
성북구(www.seongbuk.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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