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 ()

금천구청
금천구청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서울특별시 남서부에 위치한 구.
정의
서울특별시 남서부에 위치한 구.
개관

동쪽은 관악구, 서쪽은 경기도 광명시, 북쪽은 구로구, 남쪽은 경기도 안양시와 접하고 있다. 위치는 동경 126°52'~126°55', 북위 37°25'~37°27'이다. 면적은 13.02㎢이고, 인구는 23만 6284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0개 행정동(3개 법정동)이 있으며, 구청은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에 있다.

자연환경

지형은 안양천에 의해 형성된 범람원의 저평한 지역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어 남동쪽이 높고 북서쪽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형태의 충적층이며, 화강암질 편마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다.

관악산 서쪽 줄기에서 가장 높은 산인 삼성산(三聖山, 481m)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있는 산줄기에 해당하는 지역이 금천구의 남동쪽에 분포하는 구릉지이며, 이곳의 높은 봉우리를 호암산(虎巖山, 347m)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줄기로 이어져 내려오는 또 하나의 암산이 있는데 이 산을 금주산(衿州山 일명 衿芝山, 283.7m)이라고 한다.

경기도 의왕시 왕곡동 지지대고개에서 발원한 안양천이 구의 서부지역을 흘러 한강으로 유입되며, 금천구 시흥동 동쪽에 있는 삼성산 기슭에서 발원한 삼성천(三聖川)이 금천구를 동서로 관통하여 시흥대교 부근에서 안양천과 합류한다.

한강 연안에 위치하고 있어 편서풍대의 영향을 받아 연평균 기온은 12.9°C, 평균최고 기온은 17.3°C, 평균최저 기온은 9.1°C이며, 연 강수량은 1,356.3㎜ 내외이다.

역사

이 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신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이 한강 하류에 위치하고 있고, 한강 유역의 하남시 미사리 유적이나 강동구 암사동 유적에서 선사시대 인류가 살았던 흔적, 강남구 역삼동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선사유물, 서초구 원지동의 지석묘군 등이 발견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지역도 일찍부터 우리 조상들의 생활터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대국가로서 마한이 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으나 서기전 18년 부여계 고구려 유이민인 온조(溫祚)가 남하하여 한강 유역에 백제국(伯濟國)을 건국하고 점차 마한제국을 병합하여 삼국 중 하나인 백제로 성장하였다. 백제는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475년 고구려의 남하로 수도를 공주로 옮길 때까지 500여 년간 이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다. 한강 유역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쟁패가 계속 이어졌다.

고구려는 광개토왕 때 남하정책을 펴면서 한강 유역을 공략하여 석현성과 관미성 등 10여 성을 함락하고 이어 백제 서해안을 공격하여 58개 성을 취하였다. 이어 장수왕 때는 백제의 한성을 공격하여 개로왕을 살해함으로써 백제를 한강 유역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장악하였고, 이 일대의 행정구역은 잉벌노현(仍伐奴縣)으로 율목군(栗木郡)에 속해 있었다.

신라는 백제와 동맹을 체결하여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동맹을 파기하고 이 일대를 독차지하여 북한산주(北漢山州) 혹은 신주(新州)를 두어 관리하였다.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는 당나라와 직접적인 교섭을 통해 고구려·백제에 대항하였다. 그리하여 동아시아 세력이 고구려와 백제를 잇는 수직라인과 신라와 당을 연결하는 수평라인이 서로 대립되었고, 당나라 세력을 이용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통일을 달성한 신라는 신문왕대에 전국을 9주로 나누면서 한강 유역을 한산주(漢山州)로 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에 한주(漢州)로 개칭하였다. 이때 잉벌노현은 곡양현(穀壤縣)과 장구현(獐口縣)으로 나뉘었는데 금천구 지역은 곡양현으로 율진군(栗津郡)에 속하게 되었다.

후삼국시대 ‘금천 지역’은 양길의 부하였던 궁예(弓裔)가 895년 한산주 관내의 10여 성을 복속시킴에 따라 궁예의 휘하에 들어갔다가 왕건(王建)이 건국한 고려에 귀속되었다. 고려 건국 초기에는 각 지역에 호족세력들이 건재하였는데 한강 유역 일대에는 왕규(王規)의 세력이 가장 강대하였고, 강감찬(姜邯贊)의 후손인 금주 강씨(衿州 姜氏 혹은 衿川 姜氏) 세력과 풍덕 유씨(豊德 柳氏) 세력 등이 존재하고 있었다. 특히 금천구 일대는 강감찬의 5대조인 강여청이 이곳에 자리 잡은 이래 강감찬의 아버지 강궁진이 후삼국 통일과정에서 태조를 도와 삼한벽상공신이 되면서 이 일대의 호족세력으로 부상하였다.

고려 건국 후 금천구 지역은 금주(衿州)로, 율진군은 과주(果州)로, 장구현은 안산현(安山縣)으로 바뀌었다. 995년(성종 14) 고려의 행정구역을 5도로 나누면서 관내도(關內道)에 예속되었고, 금주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관으로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 혁파하였다. 1018년(현종 9) 다시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경기도의 수주현(樹州縣)이 되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개경에서 수도를 한강 북쪽의 한양으로 옮기고 행정제도를 개편하였다. 1394년(태조 3) 먼저 경기도를 좌·우도로, 양광도를 충청도로, 강릉교주도를 강원도로, 서해도를 풍해도로 바꾸었는데 이때 금천구는 경기좌도 과천군(果川郡)에 소속되었다. 1413년(태종 13)에는 금주를 금천현(衿川縣)으로 개명하고 현감(縣監)이 두어졌다. 이후 1795년(정조 19)에는 금천현 지명을 시흥현(始興縣)으로 바꾸었으며,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가 개편되어 전국이 23개 부 337개 군으로 바뀔 때 시흥현이 인천부 시흥군으로 승격되었다. 이듬해 23부제가 폐지됨에 따라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1910년 조선의 국권을 강제 침탈한 일본은 조선의 전통적인 지방제도와 생활권을 이루고 있는 행정 구역의 개편을 시도하여 1914년 지방제도를 12부 317군에서 12부 220개 군으로 폐지 혹은 통합하였다. 이때 경기도 시흥군에 속하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주로 동면 지역 오늘날의 금천구 지역이다. 당시 동면에 속해 있던 리는 시흥리, 안양리, 독산리, 신림리, 상도리, 봉천리, 가리봉리였다.

이 지역은 광복 이후에도 경기도 시흥군과 부천군에 분할, 소속되어 있다가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에 편입되었다. 이때 서울시의 영역을 대규모로 확대하면서 10개 출장소를 설치하였는데 시흥군 동면의 시흥리와 독산리 및 가리봉리 일대는 영등포구 관악출장소에 속하였다. 이후 1980년 4월 1일 구로동 공업단지를 중심으로 발전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영등포구의 구로동, 가리봉동, 독산동 등 남부지역을 나누어 구로구를 신설함에 따라 이 지역은 구로구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에는 독산동, 시흥동, 가리봉동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금천구를 신설하였으며, 2006년 현재 금천구는 가산동, 시흥동, 독산동 등 3개의 법정동을 가지고 있다.

유물·유적

이 지역은 예부터 농사를 짓던 지역으로 문화재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시흥동의 서울 호암산성(사적, 1991년 지정)와 순흥안씨 양도공파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 호압사 석불좌상(약사불)(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2000년 지정)가 있다.

이 외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역사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는 호암산성과 호압사가 있으며,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3주, 향나무 1주, 느티나무 2주가 있다.

오래된 사찰로는 호압사가 있다. 조선시대 1393년(태조 2)에 무학대사에 의해 창건된 이 사찰은 비보사찰(裨補寺刹)의 하나로 금천구의 유일한 전통사찰이다.

국가무형문화재인 갓일은 독산동에 거주하는 박창영이 보유자이며, 1964년 12월 24일 지정되었다.

교육·문화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17개교, 중학교 9개교, 고등학교 6개교가 있다.

1960년대 이전의 이 지역은 논밭과 야산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서울시의 다른 자치구에 비해 전래되는 문화재가 적고 대학교, 종합병원, 공원 등의 편의 시설과 공연장, 박물관, 전시관 등의 문화 시설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경제 성장과 함께 문화 복지 분야의 투자가 증대되면서 종합병원, 공원, 도서관 등이 신설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지방 자치가 뿌리 내리면서 곳곳에 문화체육 시설, 복지시설, 구민회관, 극장, 공원 등 문화 공간이 점차 확충되어가고 있다.

독산동에 위치한 구민문화체육센터는 지하 2층, 지상 3층의 규모로 체력단련실과 수영장 및 체육관에서 수영, 헬스, 배드민턴 등 각종 운동을 즐길 수 있고, 교양룸과 성인룸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단소·바둑·미술·생활영어 등의 문화강좌를 운영하고 있으며, 소극장과 갤러리에서는 각종 전시 및 영화상영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흥동에 있는 금천문화원은 전통문화행사와 지역의 향토문화유적 답사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시민을 위한 문화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 시흥동에 있는 산기슭공원에서는 야외무대를 만들어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독산동에 위치한 금천체육공원·감로천생태공원·독산1동 근린공원 등에서는 생활체육 활동과 자연생태 문화를 감상할 수 있다. 도서관은 독산동에 금천구립정보도서관이 1999년 문을 열었다.

이 지역에는 종합스포츠센터와 같은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시민들의 생활체육 위주의 공원이나 하천변의 공간이 이용되고 있다. 독산동에 위치한 구민문화체육센터는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로 체력단련실과 수영장 및 체육관 시설을 갖추고 수영, 헬스, 배드민턴, 에어로빅, 탁구, 발레, 스포츠댄스, 유아스포츠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 외에 독산동에 위치한 금천체육공원과 독산근린공원 등 16개소의 공원이나 하천변에 운동시설을 구비하여 건강체조, 자전거, 여성축구, 마라톤, 게이트볼, 인라인, 어린이축구 등 다양한 생활체육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민속

이 지역만의 특별한 세시풍속은 없으며, 우리나라 전역에서 계절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세시풍속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정월 초하루에는 설날을 맞아 각 가정에서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는 풍속이 남아 있다. 정월 열나흘에는 오곡밥 먹기, 정월 대보름의 부럼깨기와 더위팔기, 윷놀이, 연날리기 등이 행해진다. 사월 초파일에는 절에 가서 연등달기, 칠월 복중에 개고기와 삼계탕 먹기, 추석 차례와 성묘가기, 동지 때 팥죽 먹기 등의 세시풍속이 펼쳐진다.

이 지역은 서울시의 다른 곳과 달리 예부터 시골이었기 때문에 문화원을 중심으로 전통문화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정월 대보름에는 척사대회가 벌어지고, 시흥다리밟기 행사와 함께 풍물 길놀이가 펼쳐진다. 단오 때는 초등학교 대항 씨름대회와 민속공연 및 시화전 등의 행사가 개최되며, 한가위 때는 노래자랑과 민속공연 및 초청공연 등의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마을 도당제(都堂祭)로는 독산1동에 도당굿이 있으며, 농악을 놀기도 한다.

설화·민요

이 지역에는 호압사 전설과 조마길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시흥동에 있는 호압사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남아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기고 수도 건설을 위한 각종 공사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도성을 축조하는 가운데 신축 중이던 궁궐이 무너지는 등 여러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공사 진척이 순조롭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어둠 속에서 반은 호랑이고, 반은 모양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 눈에 불을 뿜으며 건물을 들이받으려고 하였다. 이때 태조가 괴물에게 화살을 쏘라고 하였고, 화살은 빗발처럼 쏟아졌으나 괴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궁궐을 무너뜨리고 사라졌다. 태조가 침통한 마음으로 침실에 들었을 때 어디선가 “한양은 비할 데 없이 좋은 도읍지로다.”라고 하는 노인의 우렁찬 소리가 들렸다. 태조는 깜짝 놀라 “누구냐”고 소리를 질렀고, 노인은 “그건 아실 것 없고 장군께서 심려하시는 것을 덜어드릴까 하여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태조가 무슨 묘안이 있느냐고 묻자 노인은 저 멀리 보이는 한강 남쪽의 한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태조는 달빛 속에서 노인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쳤다. “호랑이다. 저 호랑이 머리를 한 산봉우리가 한양을 굽어보고 있다.”고 하면서 노인에게 저 산봉우리의 기운을 누를 방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다. 노인은 “호랑이란 꼬리를 밟히면 꼼짝 못하는 짐승이니 호랑이 형상을 한 산봉우리의 꼬리 부분에 절을 지으면 만사가 순조로울 것입니다.”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 다음날부터 이곳에 절을 짓고 절 이름을 호압사라 하였다고 한다.

산업·교통

토지의 21.5%가 임야이고 경지는 전체 토지의 0.5%이다. 대지 38.8%, 하천 4.7%, 공장용지 9.9%, 학교용지 2.6%, 도로 15.3%, 철도용지 1.6%로 전체 토지에서 대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높다.

산업 인구 가운데 제조업 종사자는 39.4%, 도소매업이 17.0%, 숙박 및 음식업이 6.2%, 운수업 5.6%, 사업서비스업 12.6% 등의 분포를 보이고 있다. 전체 사업체수 가운데 1~4명의 종사자를 가지고 있는 사업체가 전체의 79.3%로 압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1,000명 이상의 사업체는 2개 업체에 불과하다.

서울시로 진입하는 남서관문으로 북쪽으로는 1978년에 개통된 남부순환도로가 있고, 서쪽으로는 안양천을 따라 서부간선도로가 지나고 있어 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다. 또한 철도로는 경부선이 통과하고 있고, 수원 방면의 지하철 1호선이 경부선로와 연결되어 운행하고 있으며, 지하철 7호선도 지나고 있다. 경기도 서남부에서 서울로 진입하는 입구에 해당하여 서해안고속도로를 통해 많은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하게 연결되는 교통로이다.

금천구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는 시흥대로와 서쪽의 안양천을 따라 남북으로 연결되는 서부간선도로, 그리고 동서로 연결되는 남부순환도로가 서로 연결되면서 이 지역의 중심도로 역할을 하고 있다. 도로의 크기에 따라 광로(廣路)·중로(中路)·소로(小路)를 모두 합하면 총연장은 178㎞에 달하며, 도로 포장률은 99.9%이다.

폭 40m 이상의 넓은 도로는 서부간선도로, 시흥대로, 남부순환로 등이 있다. 이 외의 간선도로로 공단로, 구로동길, 독산역길, 두산길, 독산동길, 금천로, 벚꽃십리길 등의 도로가 있어 동서남북 사통팔달로 이어진다.

지하철 1호선은 1971년 시청 앞에서 청량리역까지 공사를 착공하여 1974년 개통되었고, 전철과 연결되어 성북과 수원을 운행하였다. 이후 의정부 북부와 천안까지 확대하여 모두 59개 역이 되었다. 금천구를 지나는 1호선은 전철 구간으로 가산디지털단지역, 독산역, 금천구청역, 석수역이며,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7호선을 갈아탈 수 있다.

지하철 7호선은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에서 금천구 온수역까지 42개 역을 운행하는 전철로 1990년 착공하여 2000년 8월 완전히 개통되었으며, 이 중 금천구 지역은 2000년 7월에 공사가 완료되었다. 금천 지역을 지나는 7호선은 가산디지털단지역이며, 이곳에서 1호선 전철을 갈아 탈 수 있다.

관광

이 지역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호암산이다. 이곳에는 문화유적지로서의 한우물과 주변산성지, 호압사, 석약사 등이 있으며, 시흥계곡과 칼바위 등의 명소가 있어 여름에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시내와 가까운 공원으로는 시흥동의 산기슭공원과 독산동에 위치한 금천체육공원·감로천생태공원·독산1동 근린공원 등이 시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 공원 안에는 각종 체육시설은 물론 만남의 광장과 생태공원을 만들어놓았기 때문에 생태체험도 가능한 곳이어서 생활체육을 즐기는 동호인들과 일반 시민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1995년 금천구가 독립구로 탄생한 이후 구민들의 문화 욕구를 충족하고 지방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채로운 문화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다. 각계각층의 구민이 참여하는 ‘금천벚꽃축제’는 매년 4월 금천구청역에서 현대아파트 고가까지 벚꽃십리길을 중심으로 피어 있는 벚꽃을 즐기며 문화예술행사와 청소년 어울마당, 먹거리장터 등을 마련하여 문화축제로 발전시키고 있다. 또한 10월에는 구민의 날을 맞아 ‘금천열린문화축제’를 개최한다. 금천체육공원과 금천구민문화체육센터에서 개최되는 이 축제는 연극공연, 뮤지컬악극공연, 야외음악회 등이 펼쳐지며, 예술인들을 중심으로 각종 전시회도 함께 개최된다.

동(洞)
  1. 가산동(加山洞)

금천구의 북서부에 위치한 동이다. 가산동의 동명 유래는 가리봉동(加里峰洞)의 ‘가(加)’자와 독산동(禿山洞)의 ‘산(山)’자를 따서 지었다. 조선시대 금천현, 시흥현의 동면에 속하였고, 1914년 이후에는 시흥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금천구가 구로구에서 분리 신설되면서 금천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서쪽으로는 경기도 과천시 철산동과 접하고, 동쪽으로는 독산동, 북쪽으로는 구로구와 접하고 있으며, 안양천변을 따라 서부간선도로가 이어져 서해안고속도로와 연결되고, 남부순환로가 동의 북쪽을 동서로 지나고 있다. 전철 1호선과 7호선이 만나는 가산디지털단지역이 디지털가산단지에서 합류되어 교통이 편리하다. 이 동에는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 등 디지털단지가 조성되어 동 전체가 회사들로 들어차 있으며, 학교나 전시관 및 공연장 등 문화시설이 없다.

  1. 독산동(禿山洞)

금천구의 중앙에 위치한 동이다. 독산동의 동명은 이 마을 산봉우리에 나무가 없어 벌거숭이 산이어서 대머리, 민둥민둥할 ‘독(禿)’자를 쓴다. 조선시대 금천현, 시흥현의 동면에 속하였고, 1914년 이후에는 시흥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금천구가 구로구에서 분리 신설되면서 금천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서쪽으로는 가산동, 동쪽으로는 관악구, 남쪽으로는 시흥동과 접하고 있다. 동의 중앙을 시흥대로가 관통하고, 간선도로와 연결되어 도로망이 형성되어 있으며, 전철 1호선 독산역이 있다. 구민문화체육관이 있고 금천체육공원, 감로천생태공원, 독산동근린공원에서 체육활동을 즐길 수 있다. 행정동으로는 독산1·2·3·4동, 독산본동의 5개가 있다.

  1. 시흥동(始興洞)

금천구의 남부에 위치한 동이다. 시흥동의 동명은 1795년(정조 19) 금천현의 행정지명을 시흥현으로 개칭하면서 생긴 이름이다. 조선시대 금천현, 시흥현의 동면에 속하였고, 1914년 이후에는 시흥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금천구가 구로구에서 분리 신설되면서 금천구의 법정동이 되었다. 동의 북쪽에는 독산동, 남쪽에는 경기도 안양시, 서쪽으로는 경기도 광명시, 동쪽으로는 관악구와 접하고 있다. 동의 중앙을 시흥대로가 관통하고, 간선도로와 연결되어 도로망이 형성되어 있으며, 전철 1호선 금천구청역이 있다. 금천문화원에서 전통문화축제와 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행정동으로는 시흥1·2·3·4·5·동, 시흥본동 등 6개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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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5)
『북한지』(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경조부지』(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2000)
『서울의 하천』(이상배, 2000)
『향토문화지』(금천구청, 1996)
『서울의 전래동명』(이재곤, 백산출판사, 1994)
『서울육백년사』 민속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90)
『서울육백년사』문화사적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서울육백년사』1∼6(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77∼2006)
『한경지략』(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56)
『동국여지비고』(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56)
금천구(www.geumcheon.go.kr)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이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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