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충근보우공신(忠勤輔佑功臣)에 책록된 귀화인. 몽골인.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281년(충렬왕 7), 원에서 김주(金州) 등에 진변만호부(鎭邊萬戶府)를 둘 때 원으로부터 소용대장군진변만호(昭勇大將軍鎭邊萬戶)에 임명되어 호부(虎符) 및 직인(職印)을 하사 받았다. 이때 합포(合浦)에 있으면서 전라도 · 경상도 백성을 크게 괴롭혔다.
1286년(충렬왕 12)에 부지밀직(副知密直)에 임명되고, 적(籍)을 승평군(昇平郡)에 두었으며, 그 뒤 판밀직지도첨의찬성사(判密直知都僉議贊成事) 등의 관직을 거쳐 1298년(충렬왕 24)에 광정사참지기무(光政事參知機務)에 임명되었다가 곧 중대광첨의시랑찬성사판병조감찰사사(重大匡僉議侍郎贊成事判兵曹監察司事)에 임명되었다.
1299년(충렬왕 25), 충렬왕의 측근인 한희유(韓希愈) 등이 인후 등을 죽이고 충렬왕과 함께 섬으로 들어가려 한다는 반역 모의에 대한 고발 사건, 이른바 ‘한희유 무고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인후는 당시 고려에 와 있던 몽골 관리인 카산[哈散]에게 이를 고하여 처벌을 요청하였다. 카산은 조사 결과 이 일이 무고 사건임을 확인하고 한희유 등을 석방하려 하였지만 인후 등이 이를 몽골 조정에 고하여 관련자들이 소환되었다.
인후가 이 사건을 확대시킨 데에는 한희유와의 사적인 불화도 배경이 되었지만, 사건을 조사하고 몽골에 돌아간 카산이 황제에게 인후 등이 충선왕(忠宣王)을 위해 도모한 일이었다고 보고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충렬왕과 충선왕 간의 중조 정국이라는 정국 상황이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인후는 충렬왕의 신임을 받아 측근으로 활약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충렬왕이 아닌 제국대장공주의 사속인(私屬人)이었다. 이에 1297년(충렬왕 23) 제국대장공주가 사망하고, 세자(뒤의 충선왕)가 그 사망 원인이 충렬왕이 총애했던 궁인 무비(無比) 및 충렬왕의 측근 세력 때문이라 하며 이들을 처형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후는 충렬왕이 아닌 세자, 즉 충선왕의 세력으로 활동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희유 등은 원 조정에 소환되었으나, 1300년(충렬왕 26) 7월에 원 조정에 들어간 충렬왕이 변론하여 석방되었고, 이들을 무고한 인후 등도 용서를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인후는 1299년 고려에서 파면되었고, 원 조정에서 용서 받은 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있다가, 1307년(충렬왕 33)에 충선왕이 복권한 뒤에야 고려로 돌아와 자의도첨의사사평양군(咨議都僉議司事平壤君)에 임명되고 다시 만호(萬戶)의 호부를 차게 되었다.
충선왕이 복위한 뒤 첨의밀직(僉議密直)에 임명되었다가 검교정승(檢校政丞)이 더해졌고, 충근보우공신(忠勤輔佑功臣)의 호를 받았다. 성질이 탐욕스럽고 포악해 남의 토지와 노비를 빼앗고, 세력을 빙자해 많은 뇌물을 빼앗아 엄청나게 부를 쌓았다. 1311년(충선왕 3)에 62세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 김광철, 『원간섭기 고려의 측근정치와 개혁정치』(경인문화사, 2018)
논문
- 고명수, 「충렬왕대 겁린구(겁령구) 출신 관원: 몽골-고려 통혼관계의 한 단면」(『사학연구』 118, 한국사학회, 2015)
- 이명미, 「고려에 하가(下嫁)해 온 몽골공주들의 정치적 위치와 고려-몽골 관계: 제국대장공주의 사례를 중심으로」(『이화사학연구』 54, 이화사학연구소, 2017)
- 이명미, 「충렬왕 복위 연간 정치세력 분기의 양상: 김방경 사후 예장 철회 사건으로부터」(『역사문화연구』 70,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201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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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속인(私屬人), 잉신(媵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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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수릿과의 새. 몸의 길이는 28~38cm이고 암컷이 수컷보다 훨씬 크다. 등은 회색, 아랫면은 흰색이고 온몸에 어두운 갈색의 가로무늬가 있다. 수컷을 ‘난추니’, 암컷을 ‘익더귀’라 하고 길들여 작은 새 따위를 잡는 데 쓴다. 텃새 또는 떠돌이새로 숲속과 숲 부근의 개활지에서 단독으로 사는데 북위 30도에서 북극권까지 분포ㆍ번식한다. 북부 지역에 번식하는 집단은 겨울에 남하하여 겨울을 보내고 남부 지역에서 번식하는 집단은 정주한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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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마음에 품은 생각을 적어서 임금에게 올리는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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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일정한 거처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백성.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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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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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중국에서 구리로 범의 모양을 본떠 만든 徵兵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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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지금의 경상남도 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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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두 번째로 왕위에 나아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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