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은 차홀대(車忽䚟). 본관은 연안(延安).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가 시집올 때 겁령구(怯怜口: 공주의 개인 시종자)로 따라왔다. 본래 고려인이었으나 일찍이 원나라에 잡혀가 연경(燕京)에서 살았다고 한다.
제국대장공주의 겁령구가 된 것은 차신의 어머니가 공주의 유모가 된 데 연유한다. 1277년(충렬왕 3) 원나라에 가서 호피(虎皮)를 바치고 왔으며, 이듬해 충렬왕이 차신의 집에 이어(移御: 임금의 거처를 옮기는 일)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엄청나게 재물을 모은 부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1290년에 상장군(上將軍)으로 원나라에 가서 공녀(貢女) 17인을 바치고 돌아왔으며, 그 뒤 밀직사(密直司)를 거쳐 시랑(侍郞)·찬성사(贊成事)에 올랐다. 1308년(충선왕 즉위년) 검교사도자정원사(檢校司徒資政院使)에 올랐다가 곧 첨의찬성사 판의조사(僉議贊成事判儀曹事)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