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제도감

  • 역사
  • 제도
  • 고려 후기
고려 후기, 일반 백성의 굶주림 등을 진휼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 관서.
이칭
  • 이칭진제색(賑濟色)
제도/관청
  • 설치 시기1348년(충목왕 4)
  • 폐지 시기1381년(우왕 7)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보광 (가천대학교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11월 13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진제도감은 고려 후기에 일반 백성의 굶주림 등을 진휼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 관서이다. 1109년(예종 4)에 두어졌던 구제도감(救濟都監)의 후신으로, 1348년(충목왕 4)에 설치되었다고 나온다. 1381년(우왕 7)에 진제색(賑濟色)으로 개칭되었다. 진제도감은 고려전기의 구제도감(救濟都監)과 비슷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의

고려 후기, 일반 백성의 굶주림 등을 진휼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 관서.

기능과 역할

1109년(예종 4)에 역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고 길가에 방치된 시신을 거두어 매장하라는 명령에 따라 구제도감(救濟都監)이 설치되었다. 그러다가 1348년(충목왕 4) 2월에 서해도양광도에 기아가 발생하자 이를 진휼하기 위해 다시 진제도감이 설치되었다. 이때 전라도의 곡식 1만 2000석으로 죽을 끓여 진휼하도록 하였다.

또 1354년(공민왕 3)에 연복사에 진제색(賑濟色)을 두어 굶주리는 백성을 진휼하게 한 기록도 있다. 따라서 기아 등이 발생하였을 때 설치되는 진휼을 위한 임시 기구로 짐작된다.

변천 사항

고려사』 백관지에 1109년(예종 4)에 설치되었던 구제도감의 후신으로, 1348년(충목왕 4)에 설치되었다고 나온다. 또한 1381년(우왕 7)에는 진제색으로 개칭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이들 기구 사이의 계통이나 계승 관계는 확인되지 않는다. 더구나 1348년 3월에 재추가 진제색의 곡식을 충당하는 내용을 논의하는 기사를 찾을 수 있다.

따라서 백관지의 연혁과 달리 진제도감과 진제색은 사실상 동일한 기구였을 수 있다. 명칭이 유사하고 활동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함께 묶여 정리된 것이 아닌가 한다. 직제는 확인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 원전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주석

  • 주1

    : 흉년을 당하여 가난한 백성을 도와줌. 우리말샘

  • 주2

    : 고려 후기에, 병자 치료와 흉년을 당하여 가난한 백성을 돕기 위해 설치한 임시 관아. 고려 우왕 7년(1381)에 진제도감을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 주3

    : 고려 시대에 둔, 재부(宰府)와 중추원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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