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궐뿐만 아니라 좌소(左蘇) 등 행궁의 건축을 담당하였으며, 나성의 건설에도 간여하였다. 또한 중광사, 연복사 등 개경 주변의 사찰 건축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원종 대에는 여몽연합군이 일본 원정을 수행하기 위한 전함, 군기 등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조성도감의 활동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조성도감이 국가적인 건설 사업 전반을 담당하고 있었다고 짐작된다. 1281년(충렬왕 7) 2월에 조성도감이 불에 타자, 공사의 부담을 지고 있던 백성들이 하늘이 재앙을 내려 경계한 것이라고 여기기도 하였다. 이는 조성도감이 궁궐 조성 등 관련 공사를 직접 관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029년(현종 18)에 나성과 중광사를 건설하기 위한 것으로 처음 등장한다. 원종 대에 고려, 몽골 연합군이 일본 원정을 위한 전함, 군기 등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다시 등장한다. 또 충렬왕, 우왕, 공양왕 대에도 조성도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현종 대에 원리(員吏)가 있으며, 구체적으로 정장(鄭莊)이 사(使), 승적(承迪)이 이서(吏胥)로 재직하고 있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또 우왕 대에는 판사(判事)가 확인되지만, 조성도감의 정확한 직제는 알 수 없다. 아마도 많은 도감의 사례와 비슷하게 사, 부사, 판관, 서리의 직제를 갖추었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