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나성은 개성 시가지를 둘러쌌던 고려시대 수도성의 외성으로 개성성 또는 개성옛성이라고도 한다. 북한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국보급 제130호로 지정해 놓고 있다.
918년에 건국한 고려는 도읍을 개성으로 정하였고 기존의 발어참성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919년 그 안에 궁성이 건설되면서 발어참성은 대부분 황성으로 되었다. 그 후 고려 현종 때 3차에 걸치는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는 과정에서 방어상의 필요로 개성나성이 건설되었다.
강감찬의 제의로 이가도가 책임지고 1009년부터 1029년까지 21년 동안 도시 전체를 둘러쌓는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무려 30만 4,000여 명의 장정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고려 말기인 1391년부터 조선 초기인 1393년 사이에는 발어참성에 이어 성 안에 8.5㎞의 내성(반월성)이 축성되면서 개성성이 둘레 약 23㎞에 달하는 발어참성, 내성, 외성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개성나성은 송악산 마루로부터 시작하여 남쪽의 용수산, 서쪽의 지네산, 동쪽의 부흥산 등 높은 산봉우리들을 이용하여 쌓은 평산성 형식의 도성이다. 도시 전체를 둘러쌓았으며 길이는 23㎞이다. 지형상 특성과 조건에 따라 돌이나 흙, 혹은 둘을 혼합하여 성벽을 쌓았다.
돌로 쌓은 성벽은 현재 밑면의 너비가 6m, 높이는 3∼4m정도이다. 흙으로 쌓은 성벽에는 기본적으로 돌로 성심을 채웠으며 밑 부분의 일정한 높이까지는 계단처럼 돌을 쌓고 그 위에 석비레와 붉은 진흙을 번갈아 다져올렸다. 현재 밑면의 너비는 7∼8m이다. 성벽의 높이는 3∼4m이나 그 이상의 높이로 남아있는 곳도 적지 않다.
개성나성에는 25개의 성문이 있었다. 동대문(숭인문), 오정문(선의문), 비전문(회빈문), 북성문 등 4개의 성문은 각각 동, 서, 남, 북의 큰 성문이었고 그 밖에 중간 성문 8개와 작은 성문 13개가 있었다. 큰 성문들과 기타 중요한 성문 14개소에는 옹성을 쌓아 그 방비를 강화하였다.
『조선향토대백과』2(한국 평화문제연구소 · 조선 과학백과사전출판사 공동편찬, 평화문제연구소, 2006)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Ⅳ (조선유물유적도감편찬위원회 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