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시대 수도방어를 위해 축조한 성곽. 성터.
개설
역사적 변천
강감찬의 제의로 이가도가 책임지고 1009년부터 1029년까지 21년 동안 도시 전체를 둘러쌓는 공사가 진행되었으며, 무려 30만 4,000여 명의 장정이 동원되었다. 그리고 고려 말기인 1391년부터 조선 초기인 1393년 사이에는 발어참성에 이어 성 안에 8.5㎞의 내성(반월성)이 축성되면서 개성성이 둘레 약 23㎞에 달하는 발어참성, 내성, 외성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내용
돌로 쌓은 성벽은 현재 밑면의 너비가 6m, 높이는 3∼4m정도이다. 흙으로 쌓은 성벽에는 기본적으로 돌로 성심을 채웠으며 밑 부분의 일정한 높이까지는 계단처럼 돌을 쌓고 그 위에 석비레와 붉은 진흙을 번갈아 다져올렸다. 현재 밑면의 너비는 7∼8m이다. 성벽의 높이는 3∼4m이나 그 이상의 높이로 남아있는 곳도 적지 않다.
개성나성에는 25개의 성문이 있었다. 동대문(숭인문), 오정문(선의문), 비전문(회빈문), 북성문 등 4개의 성문은 각각 동, 서, 남, 북의 큰 성문이었고 그 밖에 중간 성문 8개와 작은 성문 13개가 있었다. 큰 성문들과 기타 중요한 성문 14개소에는 옹성을 쌓아 그 방비를 강화하였다.
참고 문헌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Ⅳ (조선유물유적도감편찬위원회 편, 서울대학교 출판부, 2000)
북한지역정보넷(www.cybernk.net)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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