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4년(중종 9)에 출생하였고 1524년에 11세의 나이로 10세의 인종과 혼인하여 세자빈이 되었다. 세자빈으로 20년간 생활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인성왕후 뿐만 아니라 다른 후궁들에게서도 후사가 없어 인종이 동생 명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자 일부러 후사를 두지 않았다는 말을 듣기도 하였다.
1544년에 인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다. 그러나 인종이 즉위 9개월 만에 승하하자 곧바로 왕대비의 위치로 올라갔다. 명종은 즉위하면서 형수인 인성왕후에게 공의(恭懿)라는 존호를 올렸다. 따라서 왕실에서는 주로 공의전(恭懿殿)으로 불렸다. 32년간이나 왕대비의 위치에 있었으나 대비권을 행사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명종이 즉위할 때에는 문정왕후가 대왕대비로 수렴청정까지 하는 상황이었고, 선조가 즉위할 때는 명종비 인순왕후가 대표 대비로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 문소부부인 김씨가 죽었을 때 조문을 하는 과정에서 조정은 성종이 예종과 안순왕후에게 하였던 것과 같이 황고(皇考)의 예로서 해야 한다고 논의하였으나 그만큼의 대우를 받지는 못하였다. 1575년(선조 8)에 인순왕후가 죽은 후에야 선조에게 육선(肉膳)을 권하는 등 왕실 최고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1577년(선조 10) 11월 28일, 죽기 하루 전 자신이 죽은 후에 상례를 간략히 하고 의원과 의녀를 추문하지 말라는 유언을 내리고 다음 날 향년 64세로 사망하였다. 이러한 면모 때문에 당시 인종과 함께 후덕하고 온순한 성격을 가진 왕비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호는 효순공의인성왕후(孝順恭懿仁聖王后)이고, 능호는 효릉(孝陵)으로 경기도 고양시 원당읍 원당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