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도 충렬왕 이후의 작호에 부원군의 명칭이 보이는데, 이 칭호도 조선시대처럼 임금의 장인이나 공신의 칭호로 쓰여진 듯하다.
고려의 봉군제도(封君制度)는 조선시대로 이어져왔으나 외척의 발호를 억제하려는 정책에 따라 외척의 봉군은 1417년(태종 17) 2월에, 부마(駙馬)의 봉군은 1444년(세종 26) 7월에 각각 폐지되어 조선시대의 봉군은 종실과 공신에게만 한정되었다.
그 뒤 1466년(세조 12) 1월의 관제개혁 때 부원군의 칭호를 다만 군(君)으로 칭하도록 하였으나, 정1품 친공신은 1469년(예종 1) 6월에 부원군칭호를 복구하였고, 1470년(성종 1) 4월에 친공신은 모두 부원군에 봉하도록 하였다. 이때 왕비의 아버지에 대하여도 부원군의 칭호가 복구되었던 듯하다.
그리하여 『경국대전』에는 친공신과 왕비의 아버지에게는 정1품 군으로 봉하며, 특별히 ‘부원’ 두 자를 첨부하여 ‘부원군’으로 호칭하도록 법제화되었다. 받는 사람의 본관인 읍호(邑號)를 앞에 붙였으며, 같은 부원군이 생길 때는 옛날의 읍호나 혹은 다른 글자를 넣어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