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릉 ()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조선 제12대 인종과 정비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쌍릉
건립 시기
조선 전기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인종|인성왕후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고양 서삼릉(高陽 西三陵)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70년 05월 26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삼릉길 233-126 (원당동, 서삼릉)
내용 요약

효릉(孝陵)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조선 제12대 인종과 정비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이다. 부왕 곁에 묻히고 싶은 인종의 뜻에 따라 중종과 장경왕후의 동원이강릉이었던 정릉 곁에 자리 잡았으나, 중종의 능침이 천릉하여 어머니 장경왕후의 희릉만 남아 하나의 영역을 이루었다.

정의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조선 제12대 인종과 정비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
건립 경위

중종정릉(靖陵)에 묻고 5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1545년 7월 1일에 인종이 승하하였다. 부왕의 삼년상을 마치지 못하고 병을 얻어 효를 다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여, 자신을 부모의 곁에 묻어 줄 것과 상장(喪葬)을 소박하게 하라는 유언를 남겼다.

이것은 인성왕후를 통해 언문(諺文)으로 승정원에 전달되었으며, 덧붙여 인성왕후 자신도 인종 곁에 묻어 달라고 뜻을 밝혔다. 그 뜻에 따라 고양군에 있던 정릉의 백호에 해당하는 산자락 너머, 간목산(艮木山)에 산릉을 건립하여 10월 15일에 국장하였다.

변천

부왕의 곁을 지키고 싶었던 인종의 뜻과는 달리, 1562년에 중종의 능침이 선릉(宣陵) 곁으로 옮겨 가면서, 어머니 장경왕후희릉(犧陵)만 남게 되었다. 1577년 11월 19일에 인성왕후가 승하하여 효릉(孝陵)에 쌍릉으로 능침을 조성하고, 1578년 2월 15일에 국장하였다.

선릉을 건립한 이후로 왕릉에는 병풍석(屛風石)을 갖추었으나, 효릉은 상례를 줄이고 산릉 공역을 축소하여 병풍석을 갖추지 못하였다. 그러나 인종의 국장 이후 33년만인 1578년 10월에 대왕릉의 격식을 갖추어 병풍석을 설치하였다.

형태와 특징

한 언덕에 인종과 인성왕후의 능이 쌍릉으로 서남향으로 배치되었다. 인종릉에만 병풍석을 갖추고 두 능을 난간석(欄干石)으로 연결하여 한눈에 왕릉와 왕후릉을 구분할 수 있다. 능상은 계체석(階砌石)을 놓아 3단으로 구성하고 상계에는 혼유석망주석을 배치하고, 중계에는 장명등을 중심에 놓고 문석인(文石人)과 석마(石馬)를 한 쌍 배치하고, 하계에는 무석인(武石人)과 석마를 세웠다.

능침 아래에는 정전(正殿) 3칸에 배위청(配位廳) 3칸 규모인 6칸 규모의 정자각이 있다. 본래는 정전 3칸 좌우에 익각(翼閣)을 갖추어 5칸이며, 배위청은 3칸으로 8칸 정자각의 제도로 건립되었다. 좌우 익각의 추녀 부분이 썩어 좌우 익각을 제거하고 풍판을 달아 6칸의 규모로 남게 되었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1753년에 세워진 표석(表石)과 비각(碑閣)이 있으며, 남쪽으로 향어로 끝에는 홍살문이 있다.

의의 및 평가

선릉과 같이 왕릉에는 병풍석을 갖추되, 왕후릉에는 난간석만을 둘러 격식의 차이를 두었다. 정자각은 조선 전기에 8칸으로 지어진 정자각이 비바람으로 처마부가 썩게 되어 정전의 익각을 제거하고 6칸으로 유지되는 사례를 보여 준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춘관통고(春官通考)』
『효릉지(孝陵誌)』

단행본

『종합학술조사보고서-조선왕릉 Ⅳ』(국립문화재연구소, 2013)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위키실록사전(http://dh.aks.ac.kr/sillokwiki)
집필자
신지혜(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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