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조선 제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
건립경위
가운데 사잇돌을 세워 두 돌방의 칸막이 벽으로 하고, 북쪽에 북우석(北隅石)을 세우고 동쪽과 서쪽에 벽체를 세워 덮개돌을 덮어서 2개의 돌방을 만들었다. 서실(西室)은 세종의 수실(壽室)이며, 동실(東室)은 왕후의 돌방이다. 돌방의 남쪽에는 남문의 문짝인 두 짝의 문비석(門扉石)으로 입구를 막았다. 돌방의 외벽에는 석회와 모래 · 황토를 섞어서 4자 두께로 쌓아 회격을 만들어서 밀실하게 하고, 그 바깥에 5치 두께로 숯을 쌓아 올렸다.
7월 19일에 소헌왕후의 국장이 이루어지자 동쪽 돌방이 밀폐되었다. 1450년 2월 17일에 세종이 영응대군(永膺大君, 1434~1467)의 집에서 승하하자 예비해 둔 수실에 안장되면서 별도의 산릉 공역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6월 12일에 세종의 재궁이 서쪽 돌방에 안치되었다.
변천
새 능을 조성할 때 세조의 광릉을 전례로 삼아 현궁(玄宮)을 회다짐으로 조성하고, 병풍석(屛風石)을 설치하지 않고 난간석(欄干石)만을 세웠다. 초장지(初葬地)에 남겨진 돌거리는 옮기기 어려웠기 때문에 땅에 묻고, 정자각(丁字閣) 등의 건물도 옮겨 짓지 않고 새로 조성하였다. 1469년 3월 6일에 세종과 소헌왕후의 재궁이 여흥으로 옮겨졌다.
형태와 특징
능은 계체석(階砌石)을 3단으로 배열하였는데, 상단에는 혼유석(魂遊石)이 두 개가 놓이고 양쪽으로 망주석(望柱石)이 한 쌍 세워졌으며, 중계에는 장명등(長明燈)을 중앙에 배치하고 양쪽에 문석인(文石人)과 석마(石馬)가 마주 보게 배치되었으며, 하계에는 무석인(武石人)과 석마가 마주하여 배치되었다.
능 아래로 36보 지점에 정자각이 있고 정자각 서북쪽에 망료위(望燎位)가 있으며, 동쪽으로 17보 지점에 표석이 세워졌다. 소실되었던 수라간(水剌間)과 수복방(守僕房)은 1970년대에 복원하였으며, 천릉하면서 땅속에 묻었던 신도비(神道碑)는 1974년 3월에 발굴하여 세종대왕기념관 야외에서 전시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그러나 천릉으로 인해 여주영릉의 돌방은 소실되고 현재는 회격으로 남아 있다. 다만,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능실 제도와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흉례(凶禮)」 치장조에 기록이 남아 그 구조를 추정할 수 있다.
참고문헌
원전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춘관통고(春官通考)』
단행본
- 『종합학술조사보고서-조선왕릉Ⅱ』(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인터넷 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위키실록사전 (http://dh.aks.ac.kr/sillokwiki)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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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살아 있을 때에 미리 만들어 놓은 무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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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임금의 관(棺)을 묻던 광중(壙中).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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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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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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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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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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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무덤 앞에 편평하게 만들어 놓은 장대석.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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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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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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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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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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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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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임금이 능에서 제사를 지내고 축문(祝文)을 태우던 곳.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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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임금의 진지를 짓던 주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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