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 영릉과 영릉

  • 역사
  • 유적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에 있는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통칭하는 능호를 지칭하는 용어.
유적/고인돌·고분·능묘
  • 건립 시기
  • 관련 국가
  • 관련 단체
  • 관련 인물
  • 높이
  • 소재지
  • 양식
  • 재질
  • 정면 너비
  • 지름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경룡 (서울시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6년 01월 26일
여주 조선 세종과 소헌왕후 영릉 전경 미디어 정보

여주 조선 세종과 소헌왕후 영릉 전경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에 있는 영릉(英陵)과 영릉(寧陵)을 통칭하는 능호를 지칭하는 용어.

내용

1970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세종과 그의 비 소헌왕후(昭憲王后)의 능인 영릉(英陵)과 효종과 그의 비 인선왕후(仁宣王后)의 능인 영릉(寧陵)을 합친 능호이다.

1446년(세종 28) 소헌왕후가 죽자 광주(廣州) 서강(西岡: 현재 서울 서초구 내곡동 산13), 즉 헌릉(獻陵: 태종릉) 서쪽에 쌍실의 능을 만든 뒤 1450년에 세종이 죽자 합장하여 수릉(壽陵)이라 하였다.

그 뒤 이장에 관한 논란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않다가 1469년(예종 1)에 여주로 이장하여 능호도 영릉으로 하였다. 이 때 소헌왕후도 함께 이장하였고 능제(陵制)는 동봉이강형식(同封異岡形式)으로 하였다.

한편 효종은 1649년에 즉위하여 북벌계획을 추진하다가 죽자 양주 건원릉(健元陵: 태조릉) 서쪽에 초장하였다가 1673년(현종 14)에 이 곳으로 이장하였으며, 이듬해에 인선왕후도 이 곳에 이장하였고 능제는 동원상하봉형식(同原上下封形式)으로 하였다.

참고문헌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예종실록(睿宗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대전회통(大典會通)』

  • - 『서울육백년사-문화사적편-』(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7)

  • - 『조선왕릉석물지 상-태조∼광해군-』(은광준, 민속원, 1985)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