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황필 도산서원도 ( )

강세황필 도산서원도
강세황필 도산서원도
회화
작품
국가유산
1751년, 강세황이 이익에게 그려준 도산서원의 전경을 그린 수묵산수화.
이칭
이칭
도산도(陶山圖)
작품/서화
창작 연도
1751년
작가
강세황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강세황 필 도산서원도(姜世晃 筆 陶山書院圖)
분류
유물/일반회화/산수화/산수화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70년 08월 27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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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강세황필 「도산서원도」는 1751년 강세황이 이익에게 그려준 도산서원의 전경을 그린 수묵산수화이다. 문인화풍의 그림과, 그림을 제작한 내력을 기록한 제발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평화로운 남종산수화의 분위기를 풍기며, 원근법의 적용을 통해 더욱 현실적인 공간감을 완성하였다.

정의
1751년, 강세황이 이익에게 그려준 도산서원의 전경을 그린 수묵산수화.
내용

강세황(姜世晃)이 39세인 1751년(영조 27) 10월에 도산서원의 실경을 그린 작품으로, 그림과 18행의 제발(題跋)로 구성되었다. 제발의 마지막에는 1927년 가을에 최남선(崔南善)이 쓴 배관기(拜觀記) 2행이 덧붙여 있다.

제작 배경

강세황이 직접 짓고 쓴 제발에 따르면, 이익(李瀷, 16811763)은 강세황에게 두 가지 그림을 그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하나는 이황(李滉, 15011570)의 도산서원과 그 주변 풍광을 그린 도산도이고, 다른 하나는 주자(朱子)의 강학처인 푸젠성[福建省] 무이정사(武夷精舍)를 그린 무이도(武夷圖)이다. 강세황은 두 그림을 모두 그려 주었지만 현재는 「도산서원도」만 전하고 있다.

형태 및 특징

「도산서원도」는 도산서원과 강물을 중심에 두고, 배산임수의 지리적 특징을 강조하여 화면을 구성하였다. 서원 앞을 흐르는 강물에는 탁영담(濯纓潭), 반타석(盤陀石) 등이 묘사되었고, 왼쪽의 곡류 위에는 분천서원(汾川書院), 애일당(愛日堂), 분강촌(汾江村) 등이 묘사되었다. 서원의 건물들은 크기와 방향을 실제와 부합하게 그리고, 당명(堂名)을 그 옆에 썼다. 강세황은 도산서원의 풍경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였으나, 이 그림을 그릴 당시에 그는 도산서원에 가본 적이 없었다. 제발에 따르면 강세황은 이익이 소장한 오래된 도산도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산도를 그렸다고 한다.

강세황은 「도산서원도」에서 중국 원대의 문인화가인 황공망(黃公望)의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를 연상시키는 파노라마식 구도를 취하였다. 주1, 주2, 주3 등 문인화의 화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평화로운 남종산수화의 분위기를 풍기는 실경산수화를 구현하였다. 여기에 원근법을 적용함으로써 더욱 현실적인 공간감을 완성하였다.

의의 및 평가

「도산서원도」는 1751년 무렵 강세황의 문인화에 대한 이해를 보여주며, 동시에 실학의 대가인 이익과의 긴밀한 교유를 증명하는 작품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단행본

변영섭, 『표암 강세황 회화연구』(사회평론, 2016)

논문

이경화, 「강세황의 〈도산도〉: 표암 강세황과 성호 이익이 우정으로 그린 그림」(『동아시아고대학』 37, 동아시아고대학회, 2015)
주석
주1

산수화 준법의 하나. 위에서 아래로 길게 긋는 방식으로, 마치 베의 올을 풀어 놓은 듯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우리말샘

주2

산수화 준법의 하나. 백반 덩어리처럼 그리는 동양화 기법으로, 침식이 심한 산봉우리나 암석의 모서리를 그릴 때 사용된다. 우리말샘

주3

산수화 준법의 하나. 쌀알 모양의 점을 여러 개 찍어서 그리는 동양화 기법으로. 안개 낀 산수나 온화한 풍경을 그릴 때 많이 사용한다. 점의 크기에 따라 대미법과 소미법으로 나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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