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갈대밭을 배경으로 기러기를 함께 그린 그림.
내용
형태 및 특징
조선 중기에 노안도는 사대부 출신 화가들을 중심으로 한층 활발하게 그려졌다. 이 시대의 노안도는 주로 화첩 형식의 작은 화면을 사용하며, 묘사 대상을 화면 한쪽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변각구도(邊角構圖)가 선호되었다. 아울러 절파(浙派) 화풍을 구사하여 수묵(水墨)의 강한 흑백 대비를 특징으로 한다. 김시(金禔, 1524~1593), 이경윤(李慶胤, 1545~1611), 김식(金埴, 1579~1662), 이징(李澄, 1581~1674 이후) 등 사대부 출신 화가들이 주로 노안도를 남겼다.
18세기 이후에 노안도는 길상화(吉祥畵)로서의 의미가 강조되면서 수요가 점차 확대되었다. 19세기에는 많은 화가가 노안도를 제작하였는데, 그중 장승업(張承業, 1843~1897)과 양기훈(楊基熏, 1843~?)은 다수의 그림을 남긴 대표적인 화가이다. 장승업은 청대 회화 양식을 바탕으로 담채풍의 노안도를 제작하였다. 세로로 긴 화면에 맞추어 상단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낙안(落雁)을 그리고, 하단에는 갈대나 물가에 앉은 기러기를 그린 경우가 많았다. 장승업의 낙안도는 조석진(趙錫晋), 안중식(安中植), 이도영(李道榮) 등 근대기의 많은 화가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장승업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양기훈은 40여 점에 이르는 노안도를 남겼으며, 노안도의 다양화와 대중화를 이끈 화가라 할 수 있다. 양기훈의 그림은 고의(古意)를 표방하였고, 전통적인 수묵의 노안도를 고수하였다. 화면 형식에서는 세로로 긴 협장식 외에 화첩과 대작의 연폭 병풍 형식을 사용한 노안도도 여러 점 남겼다. 그의 노안도는 배경을 극소화하고 기러기의 묘사에 중심을 두었으며, 지두화(指頭畵) 및 금니(金泥) 등의 다양한 채색 방식을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논문
- 서정민, 「석연 양기훈 노안도 연구」(『한국근현대미술사학』 29,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5)
- 이지윤, 「한국의 노안도」(이화여자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3)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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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중국 명나라 말기에 유행한, 필묵이 웅건하고 거친 산수화 화풍.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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