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안도 ()

노안도 / 장승업
노안도 / 장승업
회화
작품
갈대밭을 배경으로 기러기를 함께 그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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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노안도는 갈대밭을 배경으로 기러기를 함께 그린 그림이다. 기러기와 갈대가 어우러진 풍경을 그린 그림은 이상적인 가을 풍경으로서 감상되었다. ‘노안(蘆雁)’은 ‘노안(老安)’과 음이 같아 평안한 노후를 의미하였으며, 부부의 화목을 상징하는 길상적 의미에서 그려지기도 하였다.

목차
정의
갈대밭을 배경으로 기러기를 함께 그린 그림.
내용

노안도란 갈대밭을 배경으로 기러기를 그린 그림을 말한다. 10월에 북방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날아오는 기러기는 갈대와 함께 가을의 쓸쓸한 정취를 상징하는 회화의 소재로서 사랑받았다.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 중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를 그린 평사낙안(平沙落雁)은 강남 지역의 이상적인 경치를 상징하였다. ‘노안(蘆雁)’은 ‘노안(老安)’과 음이 같아 평안한 노후를 의미하였기 때문에 노안도는 부부의 화목을 상징하는 길상적 의미에서 그려지기도 하였다.

형태 및 특징

기러기가 회화에 등장한 것은 중국 동진 시대의 화가인 고개지(顧愷之, 344~406)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무렵에 이미 기러기를 독립된 화목으로 그리기 시작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0세기 무렵에는 갈대와 기러기를 함께 그리는 전통이 형성되었으며, 북송 대에는 노안이 인기 화목으로 자리 잡았다. 노안도의 형식에는 ‘비행하다 하강하는 기러기’[落雁], ‘다양한 모습으로 물가에 앉은 기러기’[汀雁]가 있고, 두 가지 형식을 함께 그린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기러기가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문학과 회화에서 가을 호숫가와 기러기가 어우러진 모습은 사대부가 선호하는 이상적인 풍경으로 등장한다. 그 외에도 고향에 대한 그리움, 노후의 평안 등 다양한 의미로 사랑받았다. 고려시대의 그림으로 전하는 작품은 없으나, 청자, 동경(銅鏡), 장신구 등 공예품의 문양과 문헌상의 기록을 통하여 노안도의 기본 형식이 성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노안도는 점차 사대부들이 선호하는 회화 주제로 자리 잡았다. 조선 초기부터 노안도를 묘사한 시들이 적지 않게 남아 있어 노안도가 활발하게 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신사임당 전칭의 노안도는 현존하는 가장 이른 작품으로서, 노안도의 초기 양상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하늘을 보거나, 머리를 몸에 파묻고 잠이 들거나 모이를 쪼는 등 다양한 모습의 기러기가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신사임당의 그림에 보이는 세밀한 윤곽선, 진한 채색과 정교한 필치는 노안도의 초기 양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조선 중기에 노안도는 사대부 출신 화가들을 중심으로 한층 활발하게 그려졌다. 이 시대의 노안도는 주로 화첩 형식의 작은 화면을 사용하며, 묘사 대상을 화면 한쪽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변각구도(邊角構圖)가 선호되었다. 아울러 절파(浙派) 주1을 구사하여 수묵(水墨)의 강한 흑백 대비를 특징으로 한다. 김시(金禔, 15241593), 이경윤(李慶胤, 15451611), 김식(金埴, 15791662), 이징(李澄, 15811674 이후) 등 사대부 출신 화가들이 주로 노안도를 남겼다.

18세기 이후에 노안도는 길상화(吉祥畵)로서의 의미가 강조되면서 수요가 점차 확대되었다. 19세기에는 많은 화가가 노안도를 제작하였는데, 그중 장승업(張承業, 18431897)양기훈(楊基熏, 1843?)은 다수의 그림을 남긴 대표적인 화가이다. 장승업은 청대 회화 양식을 바탕으로 담채풍의 노안도를 제작하였다. 세로로 긴 화면에 맞추어 상단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낙안(落雁)을 그리고, 하단에는 갈대나 물가에 앉은 기러기를 그린 경우가 많았다. 장승업의 낙안도는 조석진(趙錫晋), 안중식(安中植), 이도영(李道榮) 등 근대기의 많은 화가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장승업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양기훈은 40여 점에 이르는 노안도를 남겼으며, 노안도의 다양화와 대중화를 이끈 화가라 할 수 있다. 양기훈의 그림은 고의(古意)를 표방하였고, 전통적인 수묵의 노안도를 고수하였다. 화면 형식에서는 세로로 긴 협장식 외에 화첩과 대작의 연폭 병풍 형식을 사용한 노안도도 여러 점 남겼다. 그의 노안도는 배경을 극소화하고 기러기의 묘사에 중심을 두었으며, 지두화(指頭畵) 및 금니(金泥) 등의 다양한 채색 방식을 사용하였다.

참고문헌

논문

서정민, 「석연 양기훈 노안도 연구」(『한국근현대미술사학』 29,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15)
이지윤, 「한국의 노안도」(이화여자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3)
주석
주1

중국 명나라 말기에 유행한, 필묵이 웅건하고 거친 산수화 화풍.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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