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죽도

  • 예술·체육
  • 작품
  • 조선 후기
강세황(姜世晃)이 그린 조선 후기의 화훼화.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복 (국립청주박물관, 회화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강세황(姜世晃)이 그린 조선 후기의 화훼화.

내용

두루마리. 종이 바탕에 수묵(水墨). 세로 39.3㎝, 가로 283.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유물번호 德壽宮 3061). 강세황은 18세기 조선화단에 있어 활동이 두드러진 문인화가로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지칭된다. 그는 김홍도(金弘道)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림에 있어 산수, 인물, 화조, 사군자 등 모든 분야를 그렸으며 풍속화와 실경 산수뿐만 아니라 여러 점의 자화상(自畵像)까지 남기고 있다. 아울러 화원이나 문인화가 가리지 않고 그림에 많은 화평(畵評)을 남겨 명실공히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예원(藝苑)의 총수’로 지칭된다.

괴석에 난초와 대나무를 그린 「난죽도」는 족자의 「삼청도(三淸圖)」(1785년, 개인 소장)와 같은 소재로, 채색의 사용 없이 수묵만으로 그린 것과 횡권(橫卷)으로 된 점이 차이이다. 이 그림은 ‘국립중앙박물관 미공개회화특별전(1977. 4. 20∼5. 29)’을 통해 일반 공개가 이루어졌다.

조선시대에 있어 묵죽은 이정(李霆)에 의해 정형화되었다. 묵란 또한 고려시대에도 그려졌음이 문헌에서도 확인된다. 이징(李澄)·이정 등 조선 중기 그림들이 현존되나 매화나 대나무보다 시대가 뒤져 대부분이 18세기 이후 것들이다.

이 그림은 난초보다 대나무가 점하는 비중이 크며 두루마리 말미에 크고 작은 글씨로 두 제(題)를 이어서 썼다. 간기(刊紀)에 78세인 1790년 2월에 그렸음을 알 수 있다. 난초의 경우 잎이 길고 넘실대며 꽃과는 농도를 달리 했으며 꽃의 방향이 모두 다르다.

대나무는 화면의 2/3를 점하는데, 가는 줄기와 잎은 굵은 줄기와 달리 담묵(淡墨 : 진하지 않은 먹물)으로 톤을 달리했으되 뻗은 가지가 좌우로 펼쳐져 난초처럼 완만한 각도를 이루고 있다. 발문에 언급된 중국 원(元)나라 조맹부(趙孟頫, 1254∼1322년)와 친연성이 감지되기도 한다. 이 그림은 강세황의 높은 경지를 대변하는 대표작이다.

참고문헌

  • - 『강세황(姜世晃)의 예술철학(藝術哲學)과 동양화론(東洋畵論)』(김은희, 1994)

  • -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의 회화연구(繪畵硏究)』(변영섭, 일지사, 1988)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