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鄭敾)이 제작한 금오계첩은 2점이 전하고 있다. 의금부도가 수록된 첫 번째 금오계첩은 정선이 의금부 도사에 제수된 1729년에 제작된 그림으로, 의금부 관아를 측면에서 조망하여 관아와 주변 경관을 화폭에 담았다. 이 그림은 정선이 자신의 면신례를 위하여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742년 정선은 이시중(李時中, 17071777)이라는 인물의 요청으로 『금오시첩(金吾詩帖)』을 제작하였다. 심사주(沈師周, 16911757)가 적은 서문에 의하면, 이해 음력 3월 17일 의금부에 새로 부임한 도사를 환영하고 서로의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인왕산 계곡의 필운대(弼雲臺)에서 술과 시를 즐기는 모임이 이루어졌다. 당시 새로 부임한 이시중은 당대 제일의 화가인 정선에게 부탁하여 그림을 그리고, 서예가인 이의병(李宜炳, 1683~1742 이후)에게 요청하여 참석한 계원들이 읊은 시를 쓰게 하여 모두 10개의 첩으로 만들었다.
정선은 기존의 기록화적인 의금부도에서 벗어나 필운대의 모임을 중심에 놓고, 멀리 남산의 전경을 포함하는 감상화 형식으로 계회도를 제작하였다. 이 그림에서 경물들은 변화 있는 수묵(水墨)의 농담과 능란한 편필(偏筆)의 주1 등 정선 특유의 개성적인 필치로 처리되어 있어 한 폭의 실경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금오시첩』은 정선의 67세 무렵의 실경산수화풍과 함께 조선 후기 금오계첩의 변모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