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바탕에 수묵. 세로 23.4㎝, 가로 1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의 왼편 가장자리 상단부에 ‘仁齋(인재)’라는 그의 호를 새긴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다.
이 그림은 덩굴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배경에 두고 바위에 기대어 엎드린 자세로 물을 바라보고 있는 선비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그림은 중국 북송대(北宋代) 회화의 영향을 토대로 발전된 안견파(安堅派) 화풍이 크게 풍미하고 있던 당시로서는 색다른 경향의 화풍을 보이고 있다 하겠다.
산수의 조그마한 한 부분을 배경으로 한 인물 중심의 구성이라든가 근경 위주의 대담한 변각 구도(邊角構圖)와 공간감의 결여 등은 조선 중기에 유행하였던 절파계(浙派系) 소경산수인물(小景山水人物) 화풍의 선구적인 요소로 간주된다.
흑백 대비가 심한 묵법과 자유분방하게 가해진 준찰(皴擦), 날카롭고 간결하게 처리된 옷주름 선과 헝클어진 모습의 덩굴 등도 원대(元代)의 선종수묵화풍(禪宗水墨畫風)과 더불어 절파 양식의 경향과 상통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은 활달하면서도 세련미 넘치는 필치와 더불어 짙은 문기(文氣)를 풍기고 있다. 그래서 화원(畫員)이나 직업 화가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중국 절파풍의 작품과는 격조를 달리하는 화격(畫格)을 보이고 있다.
이 <고사관수도>의 화풍은 조선시대 중기에 이르러 함윤덕(咸允德)의 <기려도 騎驢圖>를 비롯하여 이경윤(李慶胤)·김명국(金明國) 등의 절파계 화가들의 소경산수인물 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