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바탕에 수묵. 세로 24. 5㎝, 가로 41.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의 오른쪽 하단부에 ‘전기사인(田琦私印)’이라는 백문(白文)과 주문(朱文)을 혼용한 도인(圖印)이 찍혀 있고, 왼쪽에는 “외로운 마음으로 계산에 대한 생각이 마구 떠올라 기유년 7월 2일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는 내용의 관지(款識)가 추사체로 적혀 있다.
전기가 24세 때인 1849년 여름에 그린 것으로서, 화면을 이등분하여 서 있는 두그루의 나무를 중심으로 왼쪽에 초정(草亭)과 대나무숲이 포치되어 있고, 그 너머의 중경과 원경은 물과 산으로 채워져 있다. 이러한 구도는 원말사대가(元末四大家)의 한 사람인 예찬(倪瓚)의 구도법과 상통하는 바 크다.
경물들은 모두 대담하게 요약된 형태로 묘사되어 있어 화면에 지극히 간일한 분위기를 감돌게 한다. 특히, 거칠며 활달하게 구사된 독필(禿筆 : 끝이 거의 다 닿은 붓)의 운필법(運筆法)은 이 그림을 격이 높은 문인화의 경지로 이끌고 있다.
이러한 화풍은 사의(寫意)와 문기(文氣)를 매우 중요시하였고, 김정희(金正喜)의 영향과 더불어 시·서·화에 뛰어났던 그의 농축된 문기가 한데 어우러진 것으로, 조선 말기 화단의 경향을 잘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