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서울특별시 서초구에 있는 조선 3대 태종과 원비 원경왕후 민씨의 쌍릉.
건립 경위
1422년에 태종이 승하하자 이백강을 산릉도감의 도제조로 임명하고, 박자청과 심보(沈寶)를 제조로 삼았다. 박자청은 인부 1만 명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기근이 심하여 인력을 대폭 줄여 약 2천 명을 동원하되, 소 수백 마리와 수레를 이용하여 해결하도록 하였다. 1422년 9월 6일에 태종의 재궁이 석실에 안치되어 쌍릉으로 완성되었다.
변천
1446년에 헌릉의 서쪽에 세종(世宗, 1397~1450, 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昭憲王后, 1395~1446)의 합장릉으로 영릉(英陵)을 조성하였으나 1469년에 여주로 옮겨졌다. 1856년(철종 7)에 순조(純祖, 1790~1834, 재위 1800~1834)의 인릉(仁陵)이 천릉하여 서쪽에 자리잡게 되어, 오늘날 헌인릉으로 알려졌다. 사적 정식 명칭은 ‘서울 헌릉과 인릉’으로, 2013년 7월에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형태와 특징
병풍석(屛風石)의 면석(面石)에는 구름문양 중심에 십이지신을 조각하여 12방향을 상징하고, 귓돌의 왼쪽에는 영저(靈杵)를, 오른쪽에는 영탁(靈鐸)을 조각하였다. 난간석(欄干石)으로 왕과 왕후의 능을 연결하였다. 제향 공간으로 정청(正廳) 3칸에 배위청(配位廳) 2칸 규모의 정자각이 있으며, 동쪽에는 비각을 갖추고 2개의 신도비가 나란히 세워졌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춘관통고(春官通考)』
- 『헌릉비석중건청의궤(獻陵碑石重建廳儀軌)』
단행본
- 『종합학술조사보고서-조선왕릉Ⅰ 고려말 조선초』(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인터넷 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위키실록사전(http://dh.aks.ac.kr/sillokwiki)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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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시대에, 중앙에서 각 사(司) 또는 청(廰)의 우두머리가 아니면서 각 관아의 일을 다스리던 직책.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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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처마 도리와 중도리를 걸고 마지막으로 마룻대를 올림. 또는 그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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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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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땅을 지키는 열두 수호신. 열두 마리의 동물, 즉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로 상징된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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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자루를 금강저 모양으로 만든 방울. 밀교에서 사용하는 중요한 불구(佛具)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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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얇은 쇠붙이를 속이 비도록 동그랗게 만들어 그 속에 단단한 물건을 넣어서 흔들면 소리가 나는 물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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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비를 세우고 비바람 따위를 막기 위하여 그 위를 덮어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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