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원릉 ()

조선시대사
유적
국가유산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있는 조선 제1대 태조의 능.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건립 시기
1408년(태종 8)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태조
소재지
경기도 구리시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구리 동구릉(九里 東九陵)
분류
유적건조물/무덤/왕실무덤/조선시대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70년 05월 26일 지정)
소재지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인창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건원릉(健元陵)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있는 조선 제1대 태조의 능이다. 1408년에 양주 검암촌에 건립하였으며, 이후로 현릉 · 목릉 · 휘릉 · 숭릉 · 혜릉 · 원릉 · 경릉 · 수릉 등 8기의 능이 더 조성되면서 동구릉(東九陵)이라고 부른다. 석실을 갖추고, 병풍석을 둘렀으며, 사초를 함흥의 갈대를 심은 특색이 있다. 병풍석의 조각과 정중석의 설치, 신도비를 세운 것 등이 조선 전기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 정자각과 신도비는 보물로 지정되었다.

정의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내에 있는 조선 제1대 태조의 능.
건립경위

1408년 5월 24일, 태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태조 이성계가 창덕궁의 별전에서 승하하였다. 터를 양주의 검암(儉巖)으로 정하고, 조묘도감제조 박자청이 공역을 시작하였다. 지하 구조인 현궁을 석실로 만들자는 의견과 회격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대립되자, 7월 26일에 세자 이제(李禔)에게 명하여 종묘에 나가 점을 쳐서 석실로 짓도록 결정하였다.

9월 7일에는 산릉의 공역이 마무리되어 9월 9일에 국장이 이루어졌다. 1409년 윤4월에 길창군 권근이 비문을 작성하고, 성석린이 글씨를 쓰고, 정구가 전액(篆額)을 써서 신도비를 세웠다.

변천

1690년에 숙종은 비각을 세우지 않아서 신도비의 글자가 문드러졌으니, 비각을 세우라고 명하여 1691년에 완공하였다. 1764년 2월에 정자각을 수리하게 되었는데, 태조의 능이니 특별히 영조가 행차하여 알릉례를 행하고, 하룻밤 묵으며 공역을 살폈다. 1784년에는 능상의 석물과 곡장이 무너지자, 정조도 영조의 예를 본받아 직접 작헌례를 거행한 후 수리를 시작하였다.

형태와 특징

건원릉의 지하 구조는 석실이며, 봉분에는 병풍석을 세우고 난간석을 둘렀다. 면석에는 12지신을 새겨서 방위를 나타내고, 우석에는 영저와 영탁을 세기는 조선 초기의 특징을 보인다. 사초는 북도(北道)의 청완(靑薍)을 심었는데, 일반적으로 산릉의 사초를 모화관의 잔디를 사용한 것과 비교하여 특징적인 모습이다.

능상은 계체석을 3단으로 구성하였다. 상계(上階)에는 중앙에 혼유석을 두고 양쪽에 망주석을 배치하고, 중계에는 장명등을 중심에 놓고 문석인 한 쌍이 마주 보고 세워졌다. 하계의 중앙에 정중석이 놓이고 양쪽에 무석인이 마주 보고 서 있다.

능상 아래에는 정전 3칸 · 배위청 2칸으로 구성된 정자각이 있는데, 18세기의 익공 형식이 잘 남아 있어 2011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 춘관통고(春官通考)』에 따르면 정자각에서 홍살문까지 거리는 약 97보이며 수라청과 수직방이 있었다 하는데, 현재는 수직방만 남아 있다.

의의 및 평가

건원릉은 조선의 첫 번째 왕릉으로 석실과 회격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석실로 건립하였다. 고려 왕릉 제도를 답습한 초기 모습으로,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기록된 석실 제도와는 다르다. 현릉 · 목릉 · 휘릉 · 숭릉 · 혜릉 · 원릉 · 경릉 · 수릉 등 8기의 능이 더 조성되면서 동구릉(東九陵)이라고 부른다.

참고문헌

원전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춘관통고(春官通考)』

단행본

『종합학술조사보고서-조선왕릉Ⅰ 고려말 조선초』(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위키실록사전(http://dh.aks.ac.kr/sillok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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