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릉 ()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조선 제18대 국왕인 현종과 명성왕후 청풍김씨의 쌍릉 합장릉.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건립 시기
조선 후기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현종|명성왕후
소재지
경기도 구리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구리 동구릉(九里 東九陵)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70년 05월 26일 지정)
소재지
경기 구리시 동구릉로 197 (인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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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숭릉(崇陵)은 조선 제18대 국왕인 현종과 명성왕후 청풍김씨의 쌍릉 합장릉이다. 1674년에 조성한 현종 숭릉의 돌거리는 효종의 옛 영릉 돌거리를 재사용하였으며, 이는 조선왕릉 중 돌거리 재사용의 첫 사례이다. 숭릉 정자각은 팔작지붕의 8칸 건물로서 ‘구리 동구릉 숭릉 정자각’이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숭릉은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정의
조선 제18대 국왕인 현종과 명성왕후 청풍김씨의 쌍릉 합장릉.
건립경위

숭릉은 조선왕릉 중 옛 왕릉 돌거리를 처음으로 재사용한 사례이다. 현종(顯宗, 1641~1674, 재위 1659~1674)의 승하 당시 1673년 효종(孝宗, 1619~1659, 재위 1649~1659) 영릉(寧陵)을 구리 동구릉(九里 東九陵)에서 여주 영릉과 영릉(驪州 英陵과 寧陵)으로 천릉하였으며, 1674년 효종의 비 인선왕후(仁宣王后, 1618~1674) 영릉(英陵)을 여주에 조성하였다.

이처럼 경제적인 부담이 커지자 명성왕후(明聖王后) 청풍김씨(淸風金氏, 1642~1683)의 명으로 동구릉에 묻어 둔 옛 영릉[舊寧陵, 1659년] 돌거리를 발굴해 재사용하였다. 옛 영릉 돌거리 중 상돌, 장명등(長明燈), 석인상(石人像) 등 일부 손상된 부분은 고쳐서 다시 사용하였다.

1674년 현종 숭릉 조영 당시 명성왕후의 명으로 왼쪽을 비워 두는 허좌(虛左)의 자리로 능지를 마련해 두었으며, 명성왕후가 1683년 10월 승하하자 1684년 4월에 안장하였다.

형태와 특징

숭릉은 능강 위에 현종과 명성왕후의 쌍릉에 난간석(欄干石)이 둘러져 있으며, 양석(羊石), 호석(虎石), 망주석(望柱石), 상돌, 장명등, 문석인(文石人), 무석인(武石人), 석마(石馬) 등의 돌거리가 설치되어 있다. 능강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 비각(碑刻), 홍살문, 연못 등이 남아 있다.

숭릉 정자각은 팔작지붕의 8칸 건물로서 ‘ 구리 동구릉 숭릉 정자각(九里 東九陵 崇陵 丁字閣)’이라는 명칭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왕릉에 팔작지붕 정자각은 세조 광릉 등 몇 곳이 있었지만, 여러 차례 개수를 통해 변개(變改)되어 현재 숭릉 정자각만 팔작지붕 형태이다. 또 정자각은 대체로 정전(正殿) 3칸, 배위청(拜位廳) 3칸의 총 6칸이지만, 숭릉 정자각은 정전 4칸, 배위청 4칸의 총 8칸으로 매우 드문 형태이다.

금석문

숭릉 비각에 있는 숭릉 표석은 1721년경 건립된 것으로 숙종(肅宗) 승하 후 명릉에 표석을 건립하면서 인경왕후 익릉과 숭릉에도 표석을 건립하게 하였다. 앞면의 전서(篆書)는 김제겸(金濟謙)이 쓰고, 뒷면의 음기(陰記)는 이관명(李觀命)이 썼다.

의의 및 평가

숭릉은 조선왕릉 중 돌거리 재사용의 첫 사례로, 옛 영릉 돌거리와 새로 제작된 숭릉 돌거리가 함께 남아 있으며, 정자각의 원형이 잘 유지되어 연구 가치가 높다. 현재 구리 동구릉 내에 자리한다.

참고문헌

원전

『〔명성왕후〕숭릉산릉도감의궤』
『〔현종〕숭릉산릉도감의궤』

단행본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Ⅴ』(국립문화재연구소, 2013)

논문

김민규, 「조선시대 능묘비 연구」(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19)
김민규, 「조선 왕릉 장명등 연구」(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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