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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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성종의 비 공혜왕후 청주한씨의 능.
유적/고인돌·고분·능묘
  • 건립 시기조선 전기
  • 관련 국가조선
  • 관련 인물공혜왕후|성종
  • 소재지경기도 파주시
  • 양식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민규 (동국대 강사)
  • 최종수정 2024년 06월 18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순릉(順陵)은 조선 성종의 비 공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넷째 딸이며, 그 언니가 예종의 비 장순왕후이다. 1648년 순릉 석인상들이 파손되자 석물의 표면 전체를 깎아 냈는데, 얼굴은 17세기의 형태로 바꾸었고 의복은 기존의 15세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적 파주 삼릉에 있다.

정의

조선 성종의 비 공혜왕후 청주한씨의 능.

건립경위

공혜왕후(恭惠王后, 1456~1474)는 1467년 훗날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69~1494)이 되는 자을산군(者乙山君)과 가례를 올리고, 1469년 성종이 즉위하면서 왕비가 되었으나 1474년 19세의 나이에 승하하였다. 순릉은 성종의 명에 의해 공릉(恭陵) 동쪽 능선에 조성되었다. 순릉 돌거리 체제는 무엇을 따랐는지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세조 광릉(光陵)이나 예종 창릉(昌陵) 등 왕릉에 준해 건립한 것으로 짐작된다.

변천

순릉은 1648년 상돌의 네 귀퉁이, 무석인(武石人) 2기, 문석인(文石人) 1기의 코가 깨진 것이 발견되었다. 북한산 중흥동(重興洞)에 부석소(浮石所)를 설치하고, 다른 왕릉을 봉심(奉審)한 결과 성종 선릉(宣陵) 석마(石馬)의 코가 부러져 유회(油灰)로 붙여 놓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깨진 돌거리를 다시 제작하지 않고 고쳐 사용하였다.

문석인, 무석인은 전체를 깎아 내고 다시 새겼는데, 원래의 복식(服飾) 형태를 그대로 반영하여 15세기의 복식에 16세기의 얼굴이 조각된 독특한 작품이 되었다. 이러한 석역(石役)을 성공적으로 끝낸 석수(石手) 도편수 조말룡(曺末龍)은 인조(仁祖)의 명에 의해 영직(影職)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제수되었다.

형태와 특징

순릉은 난간을 두른 봉분 주변에 양석(羊石)과 호석(虎石)이 배치되어 있으며, 곡담이 둘러져 있다. 봉분 앞에는 상돌, 장명등, 망주석(望柱石), 문석인, 무석인, 석마 등이 배치되어 있다. 능강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과 비각(碑刻), 홍살문이 있으며, 수라간(水剌間)과 수복방(守僕房), 재실(齋室) 등은 남아 있지 않다.

금석문

비각 내부에 있는 표석은 1817년에 장순왕후 공릉 표석과 함께 건립되었으며, 앞면의 전서(篆書)는 박윤수(朴崙壽), 뒷면의 음기(陰記)는 김시근(金蓍根)이 쓴 것이다.

의의 및 평가

공혜왕후 순릉은 1474년에 조영되었으며, 1648년 석인상(石人像)의 코 등이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다. 이때 돌거리를 새로 제작하지 않고 전체를 깎아서 다시 조각하는 방법을 채택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로 인해 15세기 복식과 17세기 얼굴이 공존하는 독특한 작품이 탄생하였다. 또한 이 일로 석수 조말룡은 영직 통정대부에 제수되고 이후 많은 여러 작품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다. 사적 파주 삼릉(坡州 三陵)에 있다.

참고문헌

  • 원전

  • - 『춘관통고(春官通考)』

  • - 『〔공혜왕후순릉〕수개도감의궤』

  • 단행본

  •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Ⅲ』(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 논문

  • - 김민규, 「도선국사수미선사비의 제작장인과 양식연구」(『문화재』 48권 제1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주석

  • 주1

    :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 주2

    : 무덤 앞에 제물을 차려 놓기 위하여 넓적한 돌로 만들어 놓은 상. 우리말샘

  • 주3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 주4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 주5

    : 임금의 명(命)으로 능이나 묘를 보살피던 일. 우리말샘

  • 주6

    : 기름, 재, 솜을 섞어서 만든 물건. 창살에 유리를 끼울 때나 목재의 구멍을 메울 때에 쓴다. 우리말샘

  • 주7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 주8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 주9

    :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우리말샘

  • 주10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 주11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 주12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 주13

    : 임금의 진지를 짓던 주방. 우리말샘

  • 주14

    :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우리말샘

  • 주15

    :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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