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릉

  • 역사
  • 유적
  • 조선 전기
조선 태조의 4대조인 추존왕 목조의 능.
이칭
  • 이칭덕안릉(德安陵)
유적/고인돌·고분·능묘
  • 건립 시기조선 전기
  • 관련 국가조선
  • 관련 인물목조|효공왕후
  • 소재지함경남도 신흥군
  • 양식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민규 (동국대 강사)
  • 최종수정 2022년 10월 1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덕릉(德陵)은 조선 태조의 4대조인 추존왕 목조의 능이다. 목조 덕릉과 효공왕후 안릉이 쌍릉으로 조영되어 있어서, 덕안릉(德安陵)이라고도 한다. 덕릉은 경흥부성 남쪽 안릉과 4리쯤 떨어져 있었으나 1410년 현재의 자리로 천릉하면서 쌍릉으로 조성하고 왕릉에 준해 석물을 갖추었다. 덕릉은 현재 함경남도 신흥군 가평면 능리에 있다.

정의

조선 태조의 4대조인 추존왕 목조의 능.

건립경위

목조(穆祖)는 조선 태조의 4대조이며, 이름은 이안사(李安社, ?~1274)이고, 오동(斡東) 천호(千戶)를 지냈다.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목왕(穆王)으로 추존하고, 덕릉(德陵)으로 추봉하였다. 목조의 비는 효공왕후이고, 익조(翼祖) 이행리(李行里)가 아들이다.

덕릉은 처음에는 경흥부성(慶興府城) 남쪽에 있었으나 야인(野人)들의 침입을 걱정하여 1410년 현재 자리로 천릉하였다. 덕릉과 안릉을 천릉하면서 쌍릉과 합장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주자(朱子)의 ‘혈(穴)은 같이 하고 곽은 각각 쓴다는 설(設)’을 모방해 동원이영(同原異塋)으로 조영하였다. 그래서 덕릉은 서편, 안릉은 동편에 있다.

변천

1411년에는 덕릉과 안릉에 표석과 재실을 지었으며, 조선시대 내내 지속적인 관리를 하였다. 1901년에는 고종(高宗)이 어필(御筆) 표석을 세웠으며, 덕릉과 안릉뿐만 아니라 지릉(智陵), 숙릉(淑陵), 순릉(純陵), 정릉(定陵), 화릉(和陵)에도 표석을 건립하고, 1906년에 비각을 건립하였다.

형태와 특징

덕릉과 안릉은 상중하계(上中下階)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계에는 한 곡장 안에 덕릉과 안릉의 봉분이 각각 병풍석을 두르고 있고, 각 봉분 앞에 혼유석이 있다. 각 봉분 주변에는 양석, 호석이 각기 2쌍씩 배치되어 있다. 중계에는 장명등, 문석인 2쌍, 하계에는 무석인 2쌍과 마석 4쌍이 배치되어 있다.

덕릉과 안릉의 정자각은 능 아래 70보 거리에 있으며, 정자각 주변에 수라청(水刺廳)과 망예위(望瘞位)가 있다. 홍살문은 정자각 동쪽 170보, 비석은 정자각 동쪽 160보, 재실은 홍살문 동쪽 210보에 있다.

금석문

1906년 건립된 비각 안에는 덕릉과 안릉 표석 총 4기가 있다. 1410년에 건립된 덕릉 표석은 앞면에 ‘목왕덕릉(穆王德陵)’, 뒷면에 ‘영락팔년시월일립(永樂八年十月日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1901년에 건립된 고종 어필 표석에는 앞면에 ‘대한목조대왕덕릉(大韓穆祖大王德陵)’이라는 전서(篆書)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 음기(陰記)가 있다.

의의 및 평가

덕릉은 조선 전기 추존왕릉의 제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병풍석에 인석(引石)과 난간석이 없는 것이나, 망주석이 설치되지 않은 점, 마석이 하계에 모여 있는 점 등 15세기 왕릉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 원전

  • - 『북로능전지(北路陵殿誌)』

  • - 『춘관통고(春官通考)』

주석

  • 주1

    : 임금이 손수 글씨를 씀. 또는 그 글씨. 우리말샘

  • 주2

    : 비를 세우고 비바람 따위를 막기 위하여 그 위를 덮어 지은 집. 우리말샘

  • 주3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 주4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5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 주6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 주7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 주8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 주9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 주10

    : 제사를 마치고 헌관(獻官)과 집례(執禮)가 축문(祝文)과 폐백(幣帛)을 파묻는 것을 지켜보던 자리. 우리말샘

  • 주11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 주12

    :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우리말샘

  • 주13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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