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태조의 4대조인 추존왕 목조의 능.
건립경위
덕릉은 처음에는 경흥부성(慶興府城) 남쪽에 있었으나 야인(野人)들의 침입을 걱정하여 1410년 현재 자리로 천릉하였다. 덕릉과 안릉을 천릉하면서 쌍릉과 합장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주자(朱子)의 ‘혈(穴)은 같이 하고 곽은 각각 쓴다는 설(設)’을 모방해 동원이영(同原異塋)으로 조영하였다. 그래서 덕릉은 서편, 안릉은 동편에 있다.
변천
형태와 특징
덕릉과 안릉의 정자각은 능 아래 70보 거리에 있으며, 정자각 주변에 수라청(水刺廳)과 망예위(望瘞位)가 있다. 홍살문은 정자각 동쪽 170보, 비석은 정자각 동쪽 160보, 재실은 홍살문 동쪽 210보에 있다.
금석문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북로능전지(北路陵殿誌)』
- 『춘관통고(春官通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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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임금이 손수 글씨를 씀. 또는 그 글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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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비를 세우고 비바람 따위를 막기 위하여 그 위를 덮어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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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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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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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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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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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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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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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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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제사를 마치고 헌관(獻官)과 집례(執禮)가 축문(祝文)과 폐백(幣帛)을 파묻는 것을 지켜보던 자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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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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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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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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