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환조의 능.
건립 경위
변천
형태와 특징
금석문
정릉 신도비는 1393년에 정총(鄭摠, 1358~1397)이 비문을 짓고, 성석린(成石璘, 1338~1423)이 비문, 권중화(權仲和, 1322~1408)가 전서(篆書)를 써서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파괴되어 1611년에 재건하였다. 이때 옛 비문을 오익(吳翊, 1574~1618)이 쓰고, 전서를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이 쓴 뒤 이정귀(李廷龜, 1564∼1635)가 음기를 지었다.
1412년에 건립한 사지비는 연사종(延嗣宗, 1360~1434)이 지었으며, 태조의 선대 8릉이 있는 곳을 기록해 놓았다. 이 사지비는 이색의 분묘기를 바꾸어 새긴 것이다. 1901년에 건립된 고종 어필 표석에는 앞면에 ‘대한환조대왕정릉(大韓桓祖大王定陵)’이라는 전서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 음기가 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북로능전지(北路陵殿志)』
- 『춘관통고(春官通考)』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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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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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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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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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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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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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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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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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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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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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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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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