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 역사
  • 유적
  • 조선 전기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환조의 능.
유적/고인돌·고분·능묘
  • 건립 시기조선 전기
  • 관련 국가조선
  • 관련 인물환조
  • 소재지함경남도 함흥시
  • 양식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민규 (동국대 강사)
  • 최종수정 2022년 10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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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정릉(定陵)은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환조의 능이다. 환조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이자춘이며, 태조 즉위 후 환조 정릉으로 추존되었다. 의혜왕후 영흥최씨 화릉과 상하 동원이영(同原異塋) 형태이며, 정릉이 위쪽, 화릉이 아래쪽에 있다. 정릉에는 태조 선대 능 중 유일하게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다.

정의

함경남도 함흥시에 있는 조선 태조의 아버지 환조의 능.

건립 경위

환조(桓祖)는 조선 태조(太祖, 1335~1408, 재위 1392~1398)의 아버지로, 이름은 이자춘(李子春, 1315~1360)이며, 비는 의혜왕후(懿惠王后) 영흥최씨(永興崔氏)이다. 도조(度祖) 이춘(李椿, ?~1342)과 경순왕후(敬順王后) 문주박씨(文州朴氏)의 아들이다. 1392년 태조가 즉위하자 환왕(桓王)으로 추존하고, 정릉(定陵)으로 추봉하였다. 정릉은 화릉(和陵)과 위아래로 조성되어 있으며 각기 돌거리가 건립되어 있다.

변천

정릉은 상하계(上下階) 2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계에는 병풍석(屛風石)을 두른 봉분 앞에 혼유석(魂遊石)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 주변에는 양석(羊石)과 호석(虎石)을 배치하고, 하계에는 장명등(長明燈), 문석인(文石人), 무석인(武石人)과 석마(石馬)가 건립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의 사진을 보면 정릉 장명등 윗부분이 구리로 보수되어 있어 잘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형태와 특징

정릉 정자각(丁字閣)은 능 아래 80보, 홍살문은 정자각 남쪽 100보, 신도비(神道碑)는 정자각 서쪽 250보, 사지기비(四至記碑)는 정자각 서쪽 60보, 재실(齋室)은 신도비 서북쪽 20보에 있다.

금석문

정릉과 화릉에는 1393년 건립되었다가 1611년에 재건한 정릉 신도비가 있고, 1412년에 건립한 사지비(四至碑), 1901년에 건립한 정릉과 화릉 표석 2기가 있다. 정릉에는 태조가 조선 개국 전 이색(李穡, 1328~1396)에게 비문을 받아 1385년 건립한 신도비도 있었으며, 여기에는 음기(陰記)로 전주이씨이거삭방이래분묘기(全州李氏移居朔方以來墳墓記)도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정릉 신도비는 1393년에 정총(鄭摠, 1358~1397)이 비문을 짓고, 성석린(成石璘, 1338~1423)이 비문, 권중화(權仲和, 1322~1408)가 전서(篆書)를 써서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파괴되어 1611년에 재건하였다. 이때 옛 비문을 오익(吳翊, 1574~1618)이 쓰고, 전서를 김상용(金尙容, 1561~1637)이 쓴 뒤 이정귀(李廷龜, 1564∼1635)가 음기를 지었다.

1412년에 건립한 사지비는 연사종(延嗣宗, 1360~1434)이 지었으며, 태조의 선대 8릉이 있는 곳을 기록해 놓았다. 이 사지비는 이색의 분묘기를 바꾸어 새긴 것이다. 1901년에 건립된 고종 어필 표석에는 앞면에 ‘대한환조대왕정릉(大韓桓祖大王定陵)’이라는 전서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 음기가 있다.

의의 및 평가

정릉은 고려 말 관료였던 이성계가 아버지의 묘역에 신도비를 건립하고 분묘기를 새기는 등의 묘비 건립에 매우 적극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조선 전기 추존왕릉의 제도를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병풍석에 난간석(欄干石)이 없는 것이나 망주석(望柱石)이 설치되지 않은 점 등 15세기 왕릉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 원전

  • - 『북로능전지(北路陵殿志)』

  • - 『춘관통고(春官通考)』

주석

  • 주1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 주2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3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 주4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 주5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 주6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 주7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 주8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 주9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 주10

    :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우리말샘

  • 주11

    :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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