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제6대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여산송씨의 능.
건립경위
1698년 단종과 정순왕후가 복위되고, 각 묘소는 1699년 봉릉(封陵)이 완료되어 왕릉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왕릉 내에는 민간의 묘가 있을 수 없기에 해주정씨는 선산을 옮겨야 할 상황이었지만, 숙종(肅宗, 재위 1661~1720)은 해주정씨의 의리를 생각해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래서 현재 사릉 서쪽 언덕에 정미수 일가의 묘소가 보존되고 있다.
사릉 봉릉 시 석물(石物)의 체제는 후릉(厚陵)을 따르고, 수(數)는 경릉(敬陵)을 따른다고 하였다. 이 말을 사릉 석물과 비교해 보면 석물의 종류는 경릉, 크기는 후릉을 따랐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형태와 특징
일반적인 왕릉에 비해 양석, 호석의 수량이 절반이며, 무석인(武石人)이 설치되지 않은 것은 세자묘(世子墓)로 조성된 경릉을 따랐기 때문이다. 능강 아래에는 정자각(丁字閣), 비각(碑閣), 홍살문이 건립되어 있다.
금석문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춘관통고(春官通考)』
- 『사릉봉릉도감의궤』
단행본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Ⅱ』(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논문
- 김민규, 「조선 왕릉 장명등 연구」(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석사학위논문, 200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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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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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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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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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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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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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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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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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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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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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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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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