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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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의 합장 단릉.
유적/고인돌·고분·능묘
  • 건립 시기조선 후기
  • 관련 국가조선
  • 관련 인물문조|신정왕후
  • 소재지경기도 구리시
  • 양식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김민규 (동국대 강사)
  • 최종수정 2023년 03월 21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수릉(綏陵)은 조선의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의 합장 단릉이다. 수릉은 1830년 효명세자 연경묘로 처음 조성하였으며, 1834년 익종으로 추존, 수릉으로 봉릉하였다. 1846년 1차 천릉 후 1855년 지금의 자리로 2차 천릉하였고 1890년 신정왕후를 합장하였다. 1970년 5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어 구리 동구릉 내에 있다.

정의

조선의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의 합장 단릉.

건립경위

문조(文祖, 1809~1830)는 세자 시절 사망하여 효명세자(孝明世子)로 봉해졌으며, 1834년 헌종이 즉위하면서 익종(翼宗)으로 추존(追尊)되고, 1899년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다시 추숭(追崇)되었다.

이에 따라 1830년 효명세자 연경묘(延慶墓)로 조성하였던 묘를 1834년 봉릉(奉陵)하였고, 1846년과 1855년 천릉(遷陵) 후 1890년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의 합장이 이루어졌다. 신정왕후는 승하 후 능호(陵號)가 홍릉(洪陵)으로 정해졌으나 익종과 합장이 결정되어 수릉(綏陵)이라는 능호를 함께 쓰게 되었다.

형태와 특징

수릉은 문조와 신정왕후가 합장된 단릉(單陵)이며, 난간석(欄干石), 양석(羊石), 호석(虎石), 곡담, 상돌, 장명등(長明燈), 문석인(文石人), 무석인(武石人), 석마(石馬) 등의 돌거리를 갖추고 있다.

능강 아래에 정자각(丁字閣), 비각(碑刻) 등의 건물이 있으며, 수복방(守僕房)과 수라간(水剌間)은 사라져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밖에도 예감(瘞坎), 산신석(山神石), 홍살문, 판위(板位) 등이 있으며, 구리 동구릉(九里 東九陵) 입구에 수릉 재실(齋室)이 남아 있다.

금석문

비각에는 1890년에 건립한 익종과 신정왕후 합봉비(合封碑)와 1902년 건립한 문조익황제,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의 표석이 있다. 이 두 표석은 모두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의 글씨이다. 합봉비는 1830년에 건립된 연경묘 표석을 1846년과 1890년에 비신(碑身)을 갈아서 다시 사용한 것이다.

의의 및 평가

수릉은 두 차례의 천릉과 왕후 합장 등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돌거리들을 추가 건립하였다. 장명등, 문석인은 1830년에 제작하였고, 무석인은 1846년에 제작하였다. 호석, 양석, 석마 두 쌍 중 한쌍은 1830년에 제작되었고, 다른 한쌍은 1846년에 추가로 건립되었다. 또 합봉비도 1830년 처음 건립된 이래 두 차례 다시 사용한 작품이다.

수릉은 세자묘로 조성되어 봉릉과 두 차례의 천릉, 신정왕후의 합장까지 변화를 담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왕릉 천릉의 중요한 사례이다.

참고문헌

  • 원전

  • - 『〔신정왕후〕수릉산릉도감의궤』(1890)

  • - 『〔익종〕수릉천봉산릉도감의궤』(1855)

  • - 『〔익종〕수릉천봉산릉도감의궤』(1846)

  • - 『〔효명세자〕연경묘묘소도감의궤』(1830)

  • 단행본

  •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Ⅷ』(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주석

  • 주1

    :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던 일. 우리말샘

  • 주2

    : 능을 받들어 보살핌. 우리말샘

  • 주3

    : 산릉을 옮겨 모심. 우리말샘

  • 주4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 주5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 주6

    :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우리말샘

  • 주7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 주8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 주9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 주10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 주11

    : 임금의 진지를 짓던 주방. 우리말샘

  • 주12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 주13

    : 조선 시대에, 신주를 모셔 두지 아니한 빈 신위(神位)를 만들어 놓던 일. 우리말샘

  • 주14

    :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우리말샘

  • 주15

    : 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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