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의 추존왕 문조와 신정왕후의 합장 단릉.
건립경위
이에 따라 1830년 효명세자 연경묘(延慶墓)로 조성하였던 묘를 1834년 봉릉(奉陵)하였고, 1846년과 1855년 천릉(遷陵) 후 1890년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의 합장이 이루어졌다. 신정왕후는 승하 후 능호(陵號)가 홍릉(洪陵)으로 정해졌으나 익종과 합장이 결정되어 수릉(綏陵)이라는 능호를 함께 쓰게 되었다.
형태와 특징
능강 아래에 정자각(丁字閣), 비각(碑刻) 등의 건물이 있으며, 수복방(守僕房)과 수라간(水剌間)은 사라져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밖에도 예감(瘞坎), 산신석(山神石), 홍살문, 판위(板位) 등이 있으며, 구리 동구릉(九里 東九陵) 입구에 수릉 재실(齋室)이 남아 있다.
금석문
의의 및 평가
수릉은 세자묘로 조성되어 봉릉과 두 차례의 천릉, 신정왕후의 합장까지 변화를 담고 있는데, 이는 19세기 왕릉 천릉의 중요한 사례이다.
참고문헌
원전
- 『〔신정왕후〕수릉산릉도감의궤』(1890)
- 『〔익종〕수릉천봉산릉도감의궤』(1855)
- 『〔익종〕수릉천봉산릉도감의궤』(1846)
- 『〔효명세자〕연경묘묘소도감의궤』(1830)
단행본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Ⅷ』(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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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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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능을 받들어 보살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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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산릉을 옮겨 모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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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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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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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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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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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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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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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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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임금의 진지를 짓던 주방.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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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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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조선 시대에, 신주를 모셔 두지 아니한 빈 신위(神位)를 만들어 놓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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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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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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