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왕후(神貞王后)는 익종의 왕비이자 제24대 헌종(憲宗)의 어머니이다. 조대비(趙大妃)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본관은 풍양(豊壤)이다.
1808년(순조 8) 12월에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이고, 증조부는 고구마를 조선에 들여온 이조판서 조엄(趙曮)이다. 어머니는 송준길(宋浚吉)의 후손인 목사 송시연(宋時淵)의 딸이다. 숙부 조인영(趙寅永)이 순조에게서 헌종의 보도(輔導)를 부탁받아 안동 김씨와 함께 외척으로서 정국에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819년(순조 19) 순조의 장남인 효명세자(孝明世子)의 빈(嬪)으로 간택되었으며, 1827년(순조 27) 원손인 헌종을 낳았다. 그러나 1830년(순조 30) 대리청정을 하던 남편이 사망하고, 아들이 세손(世孫)으로 책봉되었다. 1834년 헌종이 즉위하여 효명세자를 익종(翼宗)으로 추숭하고, 신정왕후는 왕대비(王大妃)가 되었다. 1849년 아들 헌종이 죽고, 철종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1857년(철종 8) 순조비 순원왕후(純元王后)가 별세하자 대왕대비(大王大妃)가 되었다. 1863년 철종 승하 후 왕위 계승자를 고종으로 결정하고, 수렴청정을 하였다. 1866년(고종 3) 수렴청정에서 물러났으며, 1890년(고종 27년) 4월 83세의 나이로 경복궁(景福宮) 흥복전(興福殿)에서 승하하였다.
신정왕후는 아들인 헌종이 8세에 즉위하였으나 수렴청정을 하지 못하였다. 조선에서 수렴청정은 왕실의 가장 어른이 하는 것으로 선례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당시 순조비 순원왕후가 생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1863년 철종이 재위 13년 만에 후사 없이 승하하자 신정왕후는 왕실 최고 어른으로서 왕위 계승자를 결정할 수 있었다. 이에 흥선군(興宣君) 이하응(李昰應)의 차남 명복(命福: 고종)을 신정왕후와 익종의 아들로 입후(立後)하여 왕위를 계승하도록 하였다. 고종은 즉위 시 12세였기 때문에 신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수렴청정 기간 동안 신정왕후는 주도적으로 정국 운영에 참여하며 왕권 강화와 왕실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를 위해 우선 경복궁 중건을 흥선대원군의 책임하에 추진하도록 하였다. 또한 기존 안동 김씨 중심의 정치세력을 개편하기 위해 종친(宗親)들의 위상을 강화하였고, 종친부(宗親府) 관제개혁을 통해 이들에게 실직(實職)을 주어 정치세력의 재편을 추진하였다. 경복궁 중건은 남편인 익종이 추진하려던 사업이었다. 조대비는 익종의 뜻을 계승하여 과거제도 폐해를 비롯한 각종 사회적 폐단도 시정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1899년(광무 3) 익종이 문조익황제(文祖翼皇帝)로 추존되자 신정왕후도 신정익황후(神貞翼皇后)로 함께 추존되었다. 시호는 효유헌성선경정인자혜홍덕순화문광원성숙렬명수협천융목수령희강현정휘안흠륜홍경태운창복희상의모예헌돈장계지경훈철범신정익황후(孝裕獻聖宣敬正仁慈惠弘德純化文光元成肅烈明粹協天隆穆壽寧禧康顯定徽安欽倫洪慶泰運昌福熙祥懿謨睿憲敦章啓祉景勳哲範神貞翼皇后)이다. 정식 시호가 무려 56자로 조선의 왕비 가운데 가장 긴 시호를 가지고 있다. 능은 수릉(綏陵)으로 익종과 합장되었으며,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 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