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퇴계학파의 학통으로 ‘영남삼로(嶺南三老)’로 불린 학자.
개설
생애
박손경은 고려 말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유학을 주창한 박충좌(朴忠佐)의 후예로 고조 박정시(朴廷蓍)는 형조정랑을 지냈으며, 청백리의 칭송을 받았고, 아버지 박성옥은 1728년(영조 4) 무신란이 있자 예천의병을 일으켜 의병대장으로 활약하였다.
박손경은 가정에서는 효와 동기간 우애를 실천하였다. 계모를 정성껏 봉양하였고, 아우 박민경과 우애가 독실하였다. 박민경이 한양에 거주하는 인척에게 가서 살게 되었는데, 그 집안이 역모로 온 가족이 노비가 되자, 박손경은 동생을 위해 백방으로 힘을 쏟아 영조가 이를 알고 동생을 본가로 보내주기도 하였다. 약관의 나이에 부모의 명으로 과거에 응시하지만 곧 포기하고, 평생 학문에 몰두하였다.
활동사항
박손경에 대해 안정복(安鼎福)은 이대산(李大山)·최백불암(崔百弗庵)과 함께 ‘영남삼로(嶺南三老)’로 칭하였으며, 정약용(丁若鏞)은 그의 학덕을 흠모하여 금당실에 여러 차례 예방하여 헌시하는 등 박손경은 국내 학인의 추앙을 받는 인물이었다. 저서로 10권 5책의 『남야집(南野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정조실록(正祖實錄)』
- 『남야집(南野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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