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종 ()

척사윤음
척사윤음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의 제24대(재위: 1834년~1849년) 왕.
이칭
문응(文應)
원헌(元軒)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27년(순조 27)
사망 연도
1849년(헌종 15)
본관
전주(全州)
내용 요약

헌종은 조선후기 제2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834~1849년이며, 순조가 죽자 8세에 즉위하여 대왕대비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했다. 새로 외척으로 등장한 풍양조씨가 한동안 세도를 잡기도 했으나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이어졌다. 1841년 친정을 시작했으나 과거제도·삼정의 문란으로 국가 기강이 흔들렸다. 재위 15년 중 9년에 걸쳐 수재가 발생하고 모반사건·이양선 출몰 등으로 민심이 흉흉했으며, 기해박해로 많은 천주교 신자를 학살하고 신부 김대건을 처형했다. 1849년 23세로 후사 없이 죽었다. 능호는 경릉으로 구리시에 있다.

정의
조선의 제24대(재위: 1834년~1849년) 왕.
개설

재위 1834∼1849.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름은 환(奐)이다. 자는 문응(文應)이다. 호는 원헌(元軒)이다. 순조의 손자이다. 효명세자(孝明世子) 이영[李旲, 익종(翼宗)|문조(文祖)]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풍은부원군(豐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딸 신정왕후(神貞王后)이다.

비는 영흥부원군(永興府院君) 김조근(金祖根)의 딸 효현왕후(孝顯王后)이다. 계비는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의 딸 명헌왕후(明憲王后)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30년(순조 30) 왕세손에 책봉되었다. 1834년 순조가 죽자 이 해 8세의 어린 나이로 경희궁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하였다. 대왕대비 순원왕후(純元王后: 순조妃)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1837년(헌종 3) 3월 새로 등장한 외척 풍양조씨 세력이 우세해, 순조 때부터 정권을 전횡해 온 안동김씨 세력을 물리치고 한동안 세도를 잡았다. 그러나 풍양조씨 내부의 알력과 1846년 조만영의 죽음을 계기로 정권은 다시 안동김씨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거두어 1841년 비로소 주1의 길이 열렸으나 세도정치의 여파인 과거제도 및 국가 재정의 기본이 되는 삼정(三政)의 문란 등으로 국정이 혼란해졌다.

재위 15년 중 9년에 걸쳐 수재(水災)가 발생하여 민생고가 가시지 않았다. 1836년에는 남응중(南膺中), 1844년에는 이원덕(李遠德) · 민진용(閔晉鏞) 등의 모반사건이 일어나고, 1848년부터는 많은 주2이 출몰해 행패가 심해 민심이 어수선하였다.

순조 때의 천주교 탄압정책을 이어받아 1839년에 주교 앵베르(Imbert, L. J. M.), 신부 모방(Maubant, P. P.)과 샤스탕(Chastan, J. H.)을 비롯하여 많은 신자를 학살했다( 기해박해). 이어 천주교인을 적발하기 위하여 주3을 실시하고, 1846년 최초의 한국인 신부 김대건(金大建)을 처형하였다.

재위 기간에 『열성지장(列聖誌狀)』 · 『동국사략(東國史略)』 · 『문원보불(文苑黼黻)』 ·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 『삼조보감(三朝寶鑑)』 등을 찬수하게 하고, 각 도에 주4을 수축하게 하는 등의 치적을 쌓았다. 글씨를 잘 썼다.

상훈과 추모

1849년 창덕궁 중희당(重熙堂)에서 23세로 후사 없이 죽었다. 수용(睟容: 임금의 畵像) 1본이 선원전(璿源殿)에 봉안되어 있다. 시호는 경문위무명인철효대왕(經文緯武明仁哲孝大王)이다. 묘호는 헌종(憲宗)이다. 능호는 경릉(景陵)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참고문헌

『헌종실록(憲宗實錄)』
『선원계보(璿源系譜)』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주석
주1

임금이 직접 나라의 정사를 돌봄.    우리말샘

주2

모양이 다른 배라는 뜻으로, 다른 나라의 배를 이르는 말. 주로 조선 시대에 외국의 철선을 이르는 데에 쓰였다.    우리말샘

주3

조선 시대에, 범죄자의 색출과 세금 징수ㆍ부역의 동원 따위를 위하여 다섯 민호(民戶)를 한 통씩 묶던 호적 제도. 성종 16년(1485)과 숙종 원년(1675)에 시행하였으며, 헌종 때에는 천주교를 탄압하는 데 이용하였다.    우리말샘

주4

발전(發電), 수리(水利) 따위의 목적으로 강이나 바닷물을 막아 두기 위하여 쌓은 둑.    우리말샘

집필자
김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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