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후기 은언군의 손자를 왕으로 추대하고자 반란을 모의한 주모자. 반역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러나 시흥의 이속(吏屬) 천기영(千璣英)이 사전에 고변함으로써 이 계획은 실행하기도 전에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관련자들이 모두 체포되자, 일본으로 탈출하려고 동래에 있는 왜관에 들어가 왜인들에게 자신의 탈출을 도와줄 것을 간청하였지만, 거절당하고 도리어 그들에게 잡혀서 우리 관헌에게 인도되었다.
이에 정부는 남응중을 대역부도의 죄명으로 능지처참하여 그 수급을 왜관에 현시(懸示: 죽은 자의 목을 걸어두고 경계로 삼던 일)하게 하였다.
또한 이 모의에 가담한 남경중·남공언·문헌주 등 20여 명을 극형에 처하였다. 고변자인 천기영은 대왕대비의 명령으로 오위장의 벼슬이 주어졌으며, 일본과의 우의를 두텁게 하는 의미에서 범인을 잡아 인도하여준 왜관의 관수왜(館守倭)에게는 은자(銀子) 1천 냥을 보내어 고마운 뜻을 전하게 하였다.
참고문헌
- 『헌종실록(憲宗實錄)』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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