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원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의 셋째 사위로, 금성위에 봉해져 영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세 차례에 걸쳐 중국에 사은사로 파견된 종실.
이칭
  • 이칭금성위(錦城尉)
  • 만보정(晩葆亭)
  • 시호충희(忠僖)
  • 회보(晦甫)
인물/전통 인물
  • 본관반남(潘南,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 사망 연도1790년(정조 14)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순의대부|유록대부|사은사
  • 출생 연도1725년(영조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균 (부산수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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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의 제21대 왕, 영조의 셋째 사위로, 금성위에 봉해져 영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세 차례에 걸쳐 중국에 사은사로 파견된 종실.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회보(晦甫), 호는 만보정(晩葆亭). 할아버지는 참봉 박필하(朴弼夏)이고, 아버지는 예조참판 박사정(朴師正)이며, 어머니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이택상(李宅相)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38년(영조 14) 영조의 제3녀 화평옹주(和平翁主)에게 장가들어 금성위(錦城尉)에 봉하여졌으며 영조의 깊은 사랑을 받았다. 처음 순의대부(順義大夫)를 받았으나, 뒤에 수록대부(綏祿大夫)에 승진되었다.

글씨를 잘 써서 나라에 경사나 슬픈 일이 있을 때면 금옥보책명정서관(金玉寶冊銘旌書官)이 되었는데, 모두 10여 차례에 이르렀다.

1776년(영조 52) 삼절연공 겸 사은사(三節年貢兼謝恩使), 1780년(정조 4) 진하 겸 사은사, 1784년 사은사 등 세 차례에 걸쳐 중국에 정사로 파견되었다. 몸가짐에 절도가 있었으며, 검소하였고 또한 풍류와 운치가 있었다.

참고문헌

  • - 『이계집(耳溪集)』

  • - 『연암집(燕巖集)』

  • - 『청선고(淸選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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