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아오지만호, 동관진첨사, 장기현감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 운경(雲卿)
인물/전통 인물
  • 본관함양(咸陽)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아오지만호(阿吾地萬戶)|동관진첨사|장기현감
  • 출생 연도1679년(숙종 5)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원균 (부산수산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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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아오지만호, 동관진첨사, 장기현감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운경(雲卿). 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박석민(朴碩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15년(숙종 41) 36세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1728년(영조 4) 아오지만호(阿吾地萬戶)에 임명되어 부임하는 도중에 양주에서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만호의 관직을 우선 버려두고 이 반란의 토벌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서울로 돌아온 박경태는 토벌군의 도원수로 임명된 오명항(吳命恒)에게 달려가 토벌군으로 종군할 것을 청하여 휘하병이 되었다. 이 토평군으로 출범하여 안성·죽산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 뒤 갈파지첨사(乫坡知僉使)와 동관진첨사(潼關鎭僉使)·장기현감을 제수받았으나 부모 봉양을 이유로 부임하지 않았다. 뒤에 중추부(中樞府)의 관직이 다시 내려졌고, 품계는 종2품인 가의대부(嘉義大夫)에 이르렀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갑산읍지(甲山邑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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