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일제강점기 산부인과와 소아과 전문 영혜의원과 조산병원인 허영숙산원을 개원한 의사, 기자, 여성운동가.
가계 및 인적 사항
1920년 5월 1일 산부인과와 소아과 전문을 표방한 영혜의원(英惠醫院)을 개원하였고, 같은 해 여름 서울에 큰 홍수가 나자 『동아일보』에서 주관한 수해 구호사업에 방역대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1921년 5월에 이광수와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1922년 3월 2일 좀 더 수준 높은 의학 공부를 위해 도쿄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유학길에 올랐으나 4개월 만에 다시 돌아오기도 하였다.
주요 활동
1927년 첫아이를 출산하여 기자 및 의사 활동을 중단하였으나, 1929년 『매일신보』에 「여성에게 필요한 이상적인 가정」이라는 글로 응모하여 당선되기도 하였다. 1934년 2월 첫아이가 패혈증으로 사망하자 의학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세 번째 도쿄 유학을 떠났다. 향후 산원(産院)을 경영할 포부를 가지고 1935년 11월 일본 적십자병원 산원에서 조수로 일하며 박사 논문을 쓰며 학위를 취득하려 하였지만,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이광수의 체포 소식을 듣고 유학 1년 6개월 만인 1937년 6월에 귀국하였다.
1938년 6월 근대식 설비를 갖춘 민간 조산 병원인 허영숙산원(許英肅産院)을 개원하여 당시 많은 여성의 보건과 의료에 헌신하였다. 일제의 전시체제 아래 1941년 10월 매일신보사의 ‘임전(臨戰) 생활 중견 부인 간담회’에 수차례 참석하기도 하였고, 이광수의 창씨개명 이름인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에 따라 가야마 에이코〔香山英子〕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었다.
1944년 남양주 사릉에 남편 이광수의 거처를 마련해 주기도 하였으나, 1946년 5월에 결국 남편과 협의 이혼하였다. 1950년 이광수가 한국전쟁 때 납북되어 지병으로 사망하자, 1956년 출판사 광영사를 등록하여 1963년 11월 남편의 원고를 모아 『이광수 전집』을 완간하였고, 1975년 「이광수기념비」 건립을 준비하던 중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 사상과 작품
참고문헌
단행본
- 하타노 세츠코, 『이광수, 일본을 만나다』(최주한 역, 푸른역사, 2012)
- 나혜석, 『신여성, 길위에 서다』(서경석 엮음, 호미, 2007)
- 한국여자의사회, 『한국여자의사90년』(의학출판사, 1986)
논문
- 황정현, 「허영숙의 글과 사상- 허영숙 연구를 위한 시론」(『춘원연구학보』 16, 2019)
- 신동원, 「일제강점기 여의사 허영숙의 삶과 의학」(『의사학』 21, 대한의사학회, 2012)
- 신영숙, 「일제하 한국여성사회사 연구」(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 논문, 1989)
신문 · 잡지
- 허영숙, 「여인논단 이런 사람이 없어지소서」(『신여성』 5권 1호, 1931)
- 「허영숙산원 탐방기」(『여성』, 1938. 12.)
- 『독립신보』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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