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경주향교 대성전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 문묘와 학교로이다. 향교는 계림의 서편, 문천의 북쪽에 터를 잡고 있다. 임진란 때 소실되어 1600년에 중건하였다. 전면에는 대성전이 있고, 뒤쪽에는 명륜당이 있다. 그중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선현과 우리나라 선현들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기단의 축조 방식, 고맥이석의 조영 기법, 공포와 창호, 가구에 고식의 기법이 잘 남아 있다. 2000년 향교를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은 대성전의 역사를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문묘와 학교. 유교건축.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설위(大設位) 향교의 대성전은 대개 정면 규모가 5칸이나 경주향교 대성전은 3칸이지만 간살을 크게 잡아 칸수에 비해 넓은 내부공간을 확보했다. 내부 바닥은 편의상 장마루를 깔았지만 그 하부에는 본래의 전돌 바닥이 그대로 남아 있다. 기단은 장대석을 2단으로 정연하게 쌓고 상단에는 갑석을 올렸다. 갑석은 단부를 외부로 돌출하여 떨어지는 우수 등이 기단면을 상하지 않게 다듬었고 우석(隅石)은 통돌로 치석한 오래된 기법을 보존하고 있다. 기단 전면 중앙에는 통돌로 만든 석계(石階)가 설치되어 있고, 동서 양측면에도 석계가 있다. 특히 중앙부의 석계는 계단이 좌우로 구성된 이중계(二重階)로, 기록에 의하면 임해전지에서 가져온 계단이라 전한다. 기단 윗면에는 갑석 높이에 맞추어 방전(方塼)을 깔고 그 위에 다듬은 초석을 놓고 흘림이 약한 원주를 세웠다. 맞배지붕 건물임에도 건물 네 모서리에 활주를 세워 길게 내민 처마도리의 뺄목이 아래로 처지지 않게 보강하였다. 전면 벽체의 구성은 각 칸마다 둔테가 달린 쌍여닫이 판장문을 달아 안으로 열게 했다. 판장문 하부에는 신방목을 결구하고 그 밑에 신방석을 놓아 문을 지지하게 했다. 또한 벽 전체를 돌아가며 초석 높이에 맞추어 벽체 하단에 장대석 형태의 고맥이돌을 설치한 것은 다른 향교에 찾아보기 힘든 수법이다. 공포는 외1출목의 헛첨차를 사용한 주심포 형식이다. 내부 가구는 향교건축에서는 드물게 어칸에서 1고주 7량가, 측면에서는 2고주 7량가로 후열에 내고주(內高柱)를 세웠다. 내고주열 어칸 상부에는 우물반자를 구성하여 공자의 위패를 모셔놓아 다른 위패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권위를 높이고 있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경주향교 대성전 정밀실측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14)
- 『경상북도의 향교건축-북동부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03)
- 『경주향교지(증보판)』(경주향교, 2002)
- 『한국의 향교건축』(문화재관리국, 1998)
- 『경주향교지』(경상북도·영남대학교,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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