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구리동구릉 중 하나로, 조선 제24대 헌종과 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홍씨의 삼연릉.
건립경위
세 번의 간심(看審)을 거쳐 목릉의 옛터로 결정하였다. 1630년에 능상의 석물(石物)이 무너지는 문제가 지속되어 목릉을 천릉(遷陵)하고 남겨진 곳이다.
1849년 6월 6일에 헌종(憲宗, 1827~1849)이 창덕궁의 중희당(重熙堂)에서 승하하였다. 능호를 숙릉(肅陵)으로 정하였으나, 효현왕후의 경릉에 쌍릉으로 조성하게 되어 경릉으로 합하여 부르게 되었다.
능상의 석물은 쌍릉이 배치될 수 있도록 옮겨 세우고, 헌종의 능침을 두르는 난간석(欄干石)과 혼유석(魂遊石), 좌향석(座向石)만 새로 만들어 배치하였다.
1903년 11월 15일 효정왕후(孝定王后, 1831~1903)가 경운궁 수인당(壽仁堂)에서 승하하자, 3차의 간심을 거쳐 12월 2일에 경릉 좌변으로 결정하였다. 1904년 1월 29일에 국장을 행하고 2월 22일에 공역이 마무리되었다.
효현왕후의 능침이 조성될 때 세운 능상 석물을 헌종과 효정왕후가 합부(合祔)되면서 점차 영역을 넓혀 옮겨 배치하고 혼유석과 난간석만 새롭게 조성하였다. 이로써 경릉에 헌종과 두 왕후의 능침이 나란히 배치되어 삼연릉(三連陵)의 이례적인 모습이 되었다.
형태와 특징
능상의 위계는 상계와 하계로 2단으로 구분하고, 상계에는 혼유석과 망주석(望柱石)을 배치하고, 하계에 장명등(長明燈: 무덤 앞이나 절 안에 돌로 만들어 세우는 등)을 중심에 놓고 좌우에 문무석인((文武石人)이 배치되었다.
1800년에 건릉에 세워진 문석인의 복식을 금관조복으로 조각하여 19세기에 특징을 형성하였지만, 경릉은 구리동구릉 내 먼저 만들어진 각 능의 문석인 복식에 따라 복두공복형(幞頭公服形: 머리에는 복두를 쓰고, 공복을 입은 문신의 형태)으로 조각하였다. 1757년에 정리된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의 규례를 따라 정자각은 5칸으로 건립하였다.
의의 및 평가
경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두 왕후를 동서로 나란히 배치하여 쌍릉의 확장형으로 볼 수 있는 삼연릉으로 조성되어 조선 후기 능침 배치의 유연성을 보여 준다.
참고문헌
원전
- 『국조상례보편(國朝喪禮補編)』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헌종경릉산릉도감의궤(憲宗景陵山陵都監儀軌)』
- 『효현왕후경릉산릉도감의궤(孝顯王后景陵山陵都監儀軌)』
단행본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Ⅸ』(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인터넷 자료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위키실록사전(http://dh.aks.ac.kr/sillokwiki)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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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자세히 보아 살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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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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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산릉을 옮겨 모심.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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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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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조선 영조와 계비 정순 왕후의 능. 동구릉(東九陵)의 하나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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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조선 현종과 그의 비(妃) 명성 왕후 김씨의 능. 동구릉의 하나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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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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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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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왕릉이나 지체 높은 사람의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문무관의 형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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