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7대 순종과 순명효황후 · 순정효황후의 합장릉.
건립경위
원(園)의 격으로 조성하되, 제향 공간은 정자각(丁字閣) 대신 침전(寢殿)으로 조성하고 내부에 닫집을 놓아 대한제국기의 특징이 보인다. 1907년에 순종(純宗, 1874~1926, 재위 1907~1910)이 왕위에 오르자, 황후로 승격되면서 유릉으로 격상하였다.
1926년 4월 25일에 순종이 승하하자 5월 5일에 고종(高宗, 1852~1919, 재위 1863~1907)이 묻힌 홍릉(洪陵)의 좌측 언덕에 봉표하고 7일부터 산릉의 공역을 시작하였다. 이때 홍릉의 예를 따라 순명효황후의 능침을 옮겨 합장하도록 하였다. 황후의 재궁을 옮겨와 6월 5일에 새 유릉에 안장하고, 6월 11일에 순종의 국장이 이루어졌다.
1926년에 유릉의 현궁(玄宮)을 만들 때 가운데 순종의 현궁를 마련하고 동쪽에 순명효황후의 현궁을 배치하였으며, 서쪽은 순정효황후(純貞孝皇后, 1894~1966)의 자리를 예비하여 3실로 구성하였다. 1966년 2월 13일에 순정효황후가 승하하여 비워 둔 서쪽 실에 합장되니, 하나의 봉분 아래 3기의 실을 갖춘 동봉삼실(同封三室)의 유일한 사례가 되었다.
변천
형태와 특징
침전은 정면 5칸에 측면 4칸 규모이며, 팔작지붕으로 조성되었다. 침전 내부에는 닫집을 두었는데, 홍릉의 것보다 규모가 크다. 침전 월대 정면에는 세 개의 계단을 두고 홍살문까지 얇고 넓적한 돌을 깐 길이 연결되었다.
길 좌우에는 문석인(文石人) · 무석인(武石人) · 기린 · 코끼리 · 사자 · 해치 · 낙타 · 말 순서로 석상이 마주 보도록 한 쌍씩 배치되었으며, 석마(石馬)는 두 쌍이 배치되었다. 홍살문 앞에는 재실(齋室)이 있는데, 재실에서 침전의 동쪽 계단까지 향어로가 조성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순명비유강원원소도감의궤(純明妃裕康園園所都監儀軌)』(1904)
- 『순종효황제산릉주감의궤(純宗孝皇帝山陵主監儀軌)』(1926)
단행본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Ⅸ』(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신문 · 잡지
- 『동아일보』(1927. 8. 2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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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풍수지리에서, 집터나 묏자리 따위가 묘방(卯方)을 등지고 유방(酉方)을 향하여 앉은 자리. 동쪽에서 서쪽을 향하여 앉은 자리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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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왕세자나 세자빈 및 왕의 친척 등의 산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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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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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궁전 안의 옥좌 위나 법당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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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임금의 관(棺)을 묻던 광중(壙中).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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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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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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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 돌 받침 위에 여덟모 진 기둥을 세우고 맨 꼭대기에 둥근 대가리를 얹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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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위 절반은 박공지붕으로 되어 있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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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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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1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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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2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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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3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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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4
: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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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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