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조선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
건립 경위
1896년 9월 29일에 새로운 터를 모색하였다. 수많은 후보지를 간심한 끝에 12월 7일이 되어서 청량리에 봉표하고 능호를 홍릉(洪陵)으로 변경하였다. 1897년 1월에 다시 산릉의 공역을 시작하였다.
제향 공간은 정자각이 아닌 정면 5칸의 침전으로 건립하였다. 능상에는 병풍석(屛風石)을 갖추고 난간석(欄干石)으로 치장하였으며, 망주석 · 장명등 · 문석인(文石人) · 무석인(武石人) · 석마(石馬) · 호석(虎石) · 양석(羊石) 등을 갖추었다. 10월 28일에 명성황후의 국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00년 6월부터 다시 천릉을 계획하여 23곳에 이르는 후보지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1900년 8월 24일에 금곡으로 결정하고 30일에 봉표하였으나 공역은 일정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10월 9일에 박정양의 상소로 천릉할 곳을 다시 찾았다. 10월 30일에 군장리에 봉표(封標)하였으나, 한 달 가량 논란이 지속되어 11월 24일이 되서야 확정하였다. 1901년에 홍릉의 석물을 옮기기 시작하였으나 다시 중단되어 1904년에 천릉을 실행하지 못하고 천릉도감이 폐지되었다.
1919년 1월 21일에 고종의 국상이 일어나자, 금곡에 서북향으로 봉표하고 고종의 황제릉 조성을 시작하였다. 이때 천릉을 진행하다 중단되어 청량리에 있던 명성황후의 능을 옮겨 와 금곡에 합장릉으로 조성하였다.
2월 16일에 명성황후의 재궁을 옮겨 현궁 안에 안치하였다. 3월 4일에 고종의 국장을 거행하여 현궁에 안치하고 밀폐하였다. 이로써 1895년 8월에 명성황후의 국상이 일어난 이후 1919년 고종의 국상까지 오랜 시간 홍릉의 조성 과정이 마무리되었다.
형태와 특징
능상에는 망주석과 장명등을 배치하되, 이외의 석상은 침전 앞에 두었다. 제향 공간으로 정자각 대신, 정면 5칸에 측면 4칸 규모의 침전을 팔작지붕으로 장대하게 세웠다. 전각 내부에는 당가(唐家)를 두어 정자각과는 다르다.
침전 앞마당에는 향어로를 중심에 두고 양쪽으로 문석인 · 무석인 · 기린 · 코끼리 · 해태 · 해치 · 낙타 · 말 순서로 석상을 한 쌍씩 마주 보게 배치하고 석마는 2쌍을 두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명성황후)홍릉산릉도감의궤』(1895)
- 『고종태황제산릉주감의궤』(1919)
단행본
- 『조선왕릉, 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Ⅸ』(국립문화재연구소, 201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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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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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능(陵) 앞에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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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능(陵) 앞에 세우는 무관(武官) 형상으로 만든 돌. 능 앞 셋째 줄의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하나씩 세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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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왕릉 따위의 앞에 돌로 만들어 세워 놓은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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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왕릉이나 큰 무덤 주위에 돌로 만들어 세운 호랑이.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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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왕릉이나 무덤 앞에 세워 놓은,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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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능(陵) 터를 미리 정하여 흙을 모아 봉분(封墳)을 하고 세우는 표.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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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임금의 관(棺)을 묻던 광중(壙中).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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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9
: 무덤 앞에 향로를 올려놓는 네모반듯한 돌. 탁상 모양을 새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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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0
: 궁전 안의 옥좌 위나 법당의 불좌 위에 만들어 다는 집 모형.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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