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유석 ()

민속
물품
능(陵), 원(園), 묘(墓)의 봉분 바로 앞에 설치된 직육면체 형태의 석상(石床).
물품
재질
용도
제사
관련 의례
관혼상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혼유석은 능(陵), 원(園), 묘(墓)의 봉분 바로 앞에 설치된 직육면체 형태의 석상(石床)으로, ‘영혼이 노는 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묘(墓)의 경우 봉분 앞에 설치된 직육면체 형태의 석물은 제수(祭需)를 차리는 상석(床石)이고, 상석 뒤에 설치한 작은 직육면체의 돌이 혼유석이다.

정의
능(陵), 원(園), 묘(墓)의 봉분 바로 앞에 설치된 직육면체 형태의 석상(石床).
연원 및 변천

혼유석은 ‘영혼이 노는 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혼유석이라는 명칭은 임진왜란 이후에 사용되었다. 의례서와 『산릉도감의궤』의 기록에 따르면 상(床)과 다리의 구조를 설명할 때는 석상(石床)과 족석(足石)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이 석물(石物)의 성격을 언급할 때는 혼유석과 고석(鼓石)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혼유석의 기원은 통일신라시대의 제사 시설인 제단(祭壇)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고려에서는 공민왕 부부의 현정릉처럼 정자각이 건립되면서 제사 음식을 차리는 상의 기능은 상실하였으나, 봉분 앞에 직육면체 형태의 석상은 그대로 설치했다. 이러한 능 형식이 조선의 왕릉으로 이어졌다. 처음에 조선시대 무덤은 상석만 설치했으나, 16세기 후반 이후 혼유석이 추가되었으며 17세기 이후에는 묘표(墓標)와 향로석(香爐石)까지 일렬로 설치되었다.

형태와 제작 방식

혼유석은 직육면체의 단순한 형태이다. 표면에 조각 장식은 없으나 능침(陵寢) 석물의 경우 표면을 갈아 광택을 내며 정성 들여 제작했다. 조선 왕릉에서 무게가 많이 나가는 혼유석은 12톤 정도일 만큼 능상(陵上) 석물 중에서 가장 무겁다. 혼유석이 놓인 위치는 봉분 바로 앞 정중앙인데, 석실(石室)의 남쪽 한가운데이며 그 뒤쪽이나 아래쪽에 지석(誌石)을 묻어 두기도 한다. 혼유석은 4개 혹은 5개의 둥근 형태의 족석(足石) 위에 올려져 있다. 족석의 표면에 나어두(羅魚頭)를 새겨 넣어 잡귀의 접근을 차단하고자 했다.

참고문헌

원전

『조선왕조실록』
『국조오례의』
『국조상례보편』
『상례비요』
『산릉도감의궤』
이재, 『사례편람(四禮便覽)』

단행본

『조선왕릉 석물조각사』(국립문화재연구소, 2016)
이근직, 『신라왕릉 연구』(학연문화사, 2012)
정해득, 『조선왕릉 제도연구』(신구문화사, 201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