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죽은 사람의 성명·행적 등을 글로 새기어 무덤 앞에 세우는 표석.
개설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에서 묘표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기 이곡(李穀)이 「이군묘표(李君墓表)」를 지은 데서 비롯된다. 그 뒤에 조선조에 접어들면서 점차 성행해오다가 송시열(宋時烈)에 이르러 묘표의 체재가 정착을 한다. 그 문집에 수록된 묘표는 무려 240여 편에 이르고 나름대로의 법이 창출되어 후일 문인들의 금석문의 정례(定例)가 되었다.
내용
묘표는 한정적 공간에 글을 새겨 넣어야 하기 때문에 쓰고자 하는 내용의 골자만을 수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와 같은 압축적 표현과 생략수단에 의하여 형태면에서 표현기교가 발달하였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자료적 가치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묘표도 묘갈과 같이 서사(敍事)를 위주로 하는 정체(正體)와 의론(議論)을 위주로 하는 변체(變體)가 있다. 묘갈은 명을 끝에 붙이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으나 묘표는 대체로 명을 붙이지 않는 것이 상례이며, 경부(輕浮)한 말이나 문식(文飾)을 금기로 하고 있다.
묘표의 중요내용으로는 죽은 이의 성명 · 자호 · 관향 · 선조 · 현조(顯祖) · 부모 · 생졸연월일 · 처 · 자녀 · 손증의 선계 손록과 죽은 이의 행적, 찬자의 송사(頌辭), 묘소, 찬자의 성명 등이 수록된다. 그러나 찬자에 따라서 기술하는 순서가 다르다.
참고문헌
- 『문체명변(文體明辨)』(서사증(徐師曾))
- 『中國文學總論』(兒島獻吉郞 著, 孫俍工 譯, 臺灣 商務印書館, 1972)
- 「고려시대(高麗時代) 금석문(金石文)의 자료적(資料的) 가치(價値)와 한계(限界)」(김도련, 『중국학논총』4, 국민대학교중국문제연구소,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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