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채형준(蔡亨俊)에 의하여 형 정렴의 시집 『북창집(北窓集)』과 함께 합간되었다. 장유(張維)의 서문과 오숙(吳䎘)의 발문이 있다. 1985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발간한 『이조명현집』 4권에 영인하고 수록되었다.
2권 1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 등에 있다.
권1에 시 118수, 권2에 시 121수가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문적(聞笛)」에는 형을 따라 신선술을 익히던 저자의 방외인적(方外人的) 삶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송금사이수종(送琴師李壽鍾)」은 평양에서 고향을 그리며 지은 시로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는 것이다.
「곡백씨(哭伯氏)」는 스승처럼 따르던 형의 죽음을 애도한 것이다. 그 슬픈 마음을 하늘에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형은 세상이 싫어 신선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하면서 형의 행적을 기리고 있다. 「우이도중(牛耳道中)」은 푸른 나무숲에 있는 무덤가에 서 있으려니, 뻐꾸기가 무심하게 밭갈이를 재촉한다는 내용이다. 인생무상의 감회가 구김 없이 표현되어 있다.
「이명(耳鳴)」에서는 “학을 탄 신선이 구릉가에서 피리부는가 의심하였더니, 다시 창밖 수나무의 노래인 줄로 여겼다.”라고 하며, 이명이라고 하는 병리적 현상에 대하여 다분히 선가(仙家)의 신비주의적 안목으로 해석하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그밖에 인생의 번뇌를 초월적으로 노래한 「야좌유회(夜坐有懷)」, 정월 초하룻날 늘그막의 감회를 읊은 「원일(元日)」, 국화를 마주하여 탁주를 마신다면 9월의 어느 달이 중양일(重陽日)이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중양절에 친구와의 재회를 그리며 지은 「중구기원길(重九寄元吉)」, 그리고 「우후즉경(雨後卽景)」·「금촌문유감(金村門有感)」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이 작품들은 대개 호탕(豪宕)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지금의 안목에서는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신선세계에의 동경과 화합을 추구하는 선가적인 시정이 더욱 두드러진 특징이라 하겠다.
『고옥집』은 당시에 주류를 이루던 유가풍의 견지에서 보면 이단적 색채가 뚜렷하여 호탕한 면모만이 칭도되었다. 그러나 불안정한 정서와 갈등을 물외에서 해소하려고 하던 당시의 방외인적 문인의 의식세계와 지향성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이다.
윤신지(尹新之)는 「북창고옥집서(北窓古玉集序)」에서, “시율에 노숙하고 음운이 청원하여 당나라의 명가들에게 몹시 가깝다.”고 하였다. 조익(趙翼)은 『북창고옥집발(北窓古玉集拔)』에 정작의 시를 평해 "그 가슴속의 생각이 담박해서 티끌로 뒤덮인 세속의 기운이 전혀 없었다. "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