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記)는 사실을 그대로 적는 한문의 문체이다. 기는 사물을 객관적인 관찰과 동시에 기록하여 영구히 잊지 않고 기념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기는 『주례』와 『예기』에 처음 나타났으나 문체로서 미비한 점이 많았다. 기는 당나라에 와서야 한유, 유종원 등의 출현으로 완성을 보게 되었다. 기의 문체는 부(賦)와 같으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논(論)과 같으면서도 단정을 짓지 않았다. 또한 서(序)와 같으면서도 드날리지 않고 비(碑)와 비슷하면서도 칭송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사물을 객관적인 관찰과 동시에 기록하여 영구히 잊지 않고 기념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글이다. 옛사람이 기(記)라고 이름을 한 문장은 너무나 광범하여 일체의 기사문(記事文)과 기물문(記物文)을 포괄하고 있다.
현존하는 기의 문장을 분석하면 인물을 적기도 하고 사건이나 물품, 또는 산수풍경을 적기도 하였다. 그래서 기는 대각명승기(臺閣名勝記) · 산수유기(山水遊記) · 서화잡물기(書畫雜物記) · 인사잡기(人事雜記) 등으로 구분한다.
대각명승기는 옛사람이 누각이나 정자를 신축 또는 개축하거나 명승고적을 관람할 때를 기념하여 쓰는 것이다. 돌에 새기기도 하고 현판으로 만들어 걸기도 한다. 중국 북송시대 범중엄(范仲淹)의 「악양루기(岳陽樓記)」, 왕우칭(王禹偁)의 「황강죽루기(黃岡竹樓記)」, 구양수(歐陽脩)의 「취옹정기(醉翁亭記)」, 소식(蘇軾)의 「희우정기(喜雨亭記)」 등이 명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김부식(金富軾)의 「혜음사신창기(惠陰寺新創記)」, 이제현(李齊賢)의 「운금루기(雲錦樓記)」, 조선 말기에 김택영(金澤榮)의 「남폭정기(攬瀑亭記)」 등이 대표적이다.
산수유기는 앞의 대각명승기와 비슷하지만 꼭 같지는 않다. 대각명승기의 경우는 작자가 그 장면을 보지 않고 자료를 얻어 쓰는 수도 있지만, 산수유기는 작자가 직접 그 장면을 보고 기록한다는 차이가 있다. 당나라 유종원(柳宗元)의 「영주팔기(永州八記)」, 조선 후기 박지원(朴趾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 ·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 등이 명작이다.
서화잡물기는 서화(書畫) · 기물(器物) · 물품 등만을 적은 것이다. 서(序)로 명명한 것도 있다.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여지도서(荔枝圖序)」, 한유(韓愈)의 「화기(畫記)」, 고려시대 임춘(林椿)의 「화안기(畫雁記)」, 조선시대 박지원(朴趾源)의 「표구기(豹裘記)」 등이 명문이다.
인사잡기는 기인(記人) · 기사(記事)를 중심으로 쓴 것이다. 박지원의 「이존당기(以存堂記)」, 이건창(李建昌)의 「수당기(修堂記)」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지(志)’는 이름을 기라고 하지 않았지만 기인(記人)의 내용을 한 경우가 있다. 명나라 귀유광(歸有光)의 「항척헌지(項脊軒志)」와 조선 중기 이식(李植)의 「택풍당지(澤風堂志)」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명목은 다르지만 목적은 하나이고 체제 또한 동일하다.
기의 명칭은 『주례(周禮)』의 「고공기(考工記)」와 『예기(禮記)』의 「학기(學記)」 · 「악기(樂記)」 · 「방기(坊記)」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예기』의 기는 대체로 논체(論體)이고 기체(記體)가 아니다. 『주례』의 「고공기」가 전적인 사실(寫實)의 필체이므로 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단편의 기체로는 미비한 점이 적지 않다.
양웅(揚雄)의 기에 이르러 기체가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에 기문체가 유행되지 않아서 『문선(文選)』에 기의 문체가 등재되지 않았고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도 다루지 않았다.
기는 당대(唐代) 이후에 와서야 한유의 「화기」, 유종원의 「영주팔기」 등의 출현으로 완성을 보게 되었다. 송대(宋代) 구양수 · 소식 등에 이르러 기를 서사체가 아닌 논설체로 썼다. 당시대의 진사도(陳師道)는 “한퇴지는 기를 기사체로 썼는데 지금은 기를 의론체로 쓴다.”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후대는 개선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의론체로 썼다. 그래서 서사체의 기를 정체(正體), 의론체의 기를 변체(變體)라고 하였다. 실물로는 정자도 재각도 없는데 그 이름을 가정하여 의론화한 기를 별체(別體)라고 하기에 이른 것이다.
기의 문체는 부(賦)와 같으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논(論)과 같으면서도 단정을 짓지 않고 서(序)와 같으면서도 드날리지 않고 비(碑)와 비슷하면서도 칭송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