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관련 정보
한문학
개념
사리를 판단하여 시비를 밝히는 한문 문체.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논(論)은 사리를 판단하여 시비를 밝히는 한문 문체이다. 논은 선진(先秦) 시대부터 이미 구조가 갖추어졌고 당송(唐宋) 시대에 이르러 완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창작되었으며, 내용적으로는 학문을 논한 것, 정치를 논한 것, 도덕을 논한 것, 역사를 논한 것, 인물을 논한 것 등 다양한 주제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목차
정의
사리를 판단하여 시비를 밝히는 한문 문체.
내용

중국 육조(六朝) 시대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논(論)은 차례이다. 모든 말을 엮어 맞추어 한 이치로 가다듬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 뜻이 원만하고 회통해야 하고 어수선함을 꺼린다. 반드시 생각과 이치가 맞도록 해서 꿰맨 것이 그 틈이 보이지 않게 해야 하며, 말과 생각이 긴밀하여 상대방이 틈날 수 없게 하는 것이 긴요하다.”라고 하였다.

논은 진(秦)나라 이전 시대부터 논설문(論說文)의 구조가 갖추어졌다. 혹자는 『논어(論語)』를 논의 시초라고도 한다. 그러나 『논어』는 책의 이름이지 편명(篇名)이 아니다. 가의(賈誼)의 「과진론(過秦論)」이 현존하는 최초의 단편 논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서사문(敍事文)과 유사한 대목이 많아 완전한 논의 문체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논은 당대(唐代) 한유(韓愈)의 「쟁신론(爭臣論)」, 유종원(柳宗元)의 「봉건론(封建論)」에 이르러 정착이 되었고, 구양수(歐陽脩)의 「붕당론(朋黨論)」, 소순(蘇洵)의 「관중론(管仲論)」, 소식(蘇軾)의 「범증론(范增論)」 · 「유후론(留侯論)」 등에 와서야 완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논은 논리(論理) · 논사(論史) · 논학(論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 특징으로 논은 말에 논리적인 특성을 세워 분석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다. 그래서 변체(辯體)처럼 의심스러운 것을 분별하여 밝히는 것, 의체(議體)처럼 옳은 것을 가려서 재어 보는 것, 설체(說體)처럼 시비를 바르게 하여 밝히는 것과는 같은 논설문이면서도 구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논은 논설의 의미를 같이 지닌 경우가 많아 고인의 옛 자취를 주제로 득실(得失)을 따지기도 하고, 현대 정치를 주제로 시비를 가리기도 하는 특징이 있다.

논의 내용은 정치를 논한 것, 도덕을 논한 것, 경을 해석한 것, 역사를 논한 것, 이기(理氣)와 성명(性命)을 논한 것, 그리고 자신의 처지를 감상적으로 말한 것이 있다. 명(明)나라 서사증(徐師曾)의 『문체명변(文體明辨)』에서는 논을 8품(品)으로 구분하였다. 곧 이론(理論) · 정론(政論) · 경론(經論) · 사론(史論) · 문론(文論) · 풍론(諷論) · 우론(寓論) · 설론(說論)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풍자를 위주로 하고 우의(寓意)를 목적으로 하므로 그 형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굳이 8품으로 나누어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논 양식의 전개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 작품이 창작된 고려 중기 이규보에서부터 고려 말까지가 첫 시기이고, 과거(科擧)의 영향이 커진 조선 초기 이후가 둘째 시기이고, 과문(科文)과 결별한 조선 후기가 셋째 시기이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반유자후수도론(反柳子厚守道論)」이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유자후의 “도(道)를 지키는 것이 관직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守道不如守官].”, 즉 관직을 잘 지키는 것이 도를 지키는 것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반박한 논리이다. 논리는 명석하나 문장의 측면에서 보면 그다지 명작은 아닌 듯하다. 조선 중기 장유(張維)의 「한조불록기신론(漢祖不錄紀信論)」은 기신(紀信)이 한고조(漢高祖)를 위하여 대신 죽었는데도 논공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실수라는 논평이다. 문장도 유창하고 이론도 명석하다. 조선 후기 박지원(朴趾源)의 「옥새론(玉璽論)」과 「백이론(伯夷論)」은 천하 명작으로 꼽는데, 「옥새론」은 천하를 얻는 것은 본래 덕으로 얻는 것이지 옥새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명쾌하게 논하였다. 「백이론」은 무왕(武王)이 백이를 봉하지 않은 것은 그를 잊어서가 아니고 그 의리를 드러내려 했을 따름이라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동문선(東文選)』
『문심조룡(文心雕龍)』
『문체명변(文體明辨)』

단행본

이종찬, 『한문학개론』(이우출판사, 1981)
陸翔, 『論說文自修讀本』(上海: 世界書局, 1925)
兒島獻吉郞 著, 孫工 譯, 『中國文學通論』(臺灣: 商務印書館, 1972)

논문

김윤조, 「한문 산문 '論'의 형식과 문체적 특징」(『대동한문학』 39, 대동한문학회, 201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